역시 이야기의 힘은 무섭다. 할리우드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최신작 '업'(Up)은 무릎을 치게 할 상상력으로 근사한 이야기를 발효시킨다. 그 이야기의 흡입력은 더위에 지친 눈과 귀와 마음을 쏙 빨아들일 정도로 강하다.
사랑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두렵다. 우리는 넘을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는 높고 두터운 벽으로까지 보인다. '업'은 그렇게 시원한 즐거움과 뜨거운 질투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업'은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 개막작이다. 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무장한 3D애니메이션으로 5월의 칸 해변을 들뜨게 했다. 당연하게도 극장에 들어가기 전 시선은 기술적인 완성도에 쏠린다.
픽사를 상징하는 외눈박이 스탠드 '룩소 주니어'(Luxo Jr)가 껑충껑충 뛰고 난 뒤 이어진 화면들이 단번에 동공을 확장 시킨다. 스크린 속 등장인물과 풍경은 손에 만져질 듯한 질감과 화사한 색감으로 눈을 희롱한다.
78세의 고집불통 노인 칼이 2만여 개의 풍선으로 2층짜리 주택을 하늘로 떠올리고, 그 주택이 범선처럼 창공을 미끄러지는 장관은 탄성을 끌어낸다. 머나먼 미지의 땅으로 표현된, 모험의 공간 '잃어버린 세계'의 풍경도 눈이 시리다. 애니메이션 기술에 있어 픽사가 여전히 세계 정상임을 스크린은 웅변한다.
하지만 '업'의 진정한 힘은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있지 않다. 배꼽과 콧등과 대뇌를 번갈아가며 자극하는 이야기가 '업'을 수작의 대열로 끌어올린다.
코흘리개 시절 모험을 꿈꾸며 만나 해로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린 칼과 엘리의 연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초반의 감성적인 몽타주는 쓸쓸함과 애잔함을 끌어낸다. 집을 하늘에 띄워 뒤늦은 모험에 나선 칼과 얼떨결에 집에 '승선'한 여덟 살 개구쟁이 러셀이 로맨틱 코미디의 남녀 주인공처럼 말다툼을 벌이다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들은 웃음을 담당한다.
'잃어버린 세계'에서 칼과 러셀이 만난 희귀한 새 '케빈'의 재롱잔치와 과학의 힘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개들이 펼쳐내는 에피소드도 파안대소를 연출한다(특히 다람쥐라는 말에 즉각 반응하는 개들의 본능 앞에선 포복절도 하게 된다).
게다가 의리와 정의, 그리고 모험의 중요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강조까지. 좋은 가족영화가 지녀야 할 미덕들을 골고루 갖춘 '업'에서 흠잡을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30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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