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번째 제헌절을 맞은 17일, 국회에선 사흘째 여야의 대치가 계속됐다. 제헌절 경축식과 전국의 비피해 소식에도 국회 본회의장 동시 점거농성을 한다는 외부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여야가 최소 인원만 '보초'로 남기기로 한 조정이 있었을 뿐 대치의 형국엔 본질적 변화가 없었다. 여야 공히 "건국의 아버지인 제헌 의원들 보기 부끄럽다"는 말을 되뇌었지만 그 뿐이었다. 하루종일 양측 모두 공공연히 전의를 다지며 으름장을 놓기에 바빴다.
제헌절 경축식이 열린 오전 10시, 한나라당 이학재 원희목, 민주당 박은수 홍영표 등 여야 원내부대표 4명은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본회의장에 남아 있었다. "제헌절에 해도 너무 한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보초로 4명만 남긴 것이다.
여야는 경축식이 끝난 뒤엔 보초를 1명씩 늘려 원내대표단 소속 3명씩만 본회의장에 있기로 하고 이 한시적 휴전을 18일 오전 10시까지 하루 연장키로 했다. 집중호우 피해가 심각한데 집단 농성을 계속하다간 여야 가릴 것이 없이 몰매를 맞을 듯 싶으니까 금세 합의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의원 수만 줄었을 뿐 본회의장에서의 여야 상호감시는 이어졌고 본회의장 밖에선 미디어법 직권상정 여부를 놓고 으르렁댔다.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제는 더 이상 상임위 차원의 논의는 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문방위 소집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통상의 법안심의 절차를 포기하고 직권상정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이 국회를 일당독재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만약 미디어악법을 직권상정해서 날치기하는데 앞장서면 김형오 국회의장 본인이 소망한 개헌은 물건너갈 것"이라며 김 의장 주도의 개헌논의와 연계할 방침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날 제헌절 경축식장에서 나란히 앉았던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즉석협상'을 시도했으나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그렸다.
본회의장이 극한 갈등의 장으로 변질된 반면 맞은 편에 있는 예결위원회 회의장에선 의원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든 대학생들의 토론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창조적 대학생들의 외침'을 기치로 열린 제1회 국회의장배 대학생 토론대회의 열기였다. 최우수 토론자상을 받은 송지은(21ㆍ연세대 아동가족학과 2) 씨는 "예선을 본회의장에서 치르기로 했다가 의원들이 점거해 장소가 바뀌었다"며 "토론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인데 서로 한발씩 양보했다면 이런 대치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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