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기술가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기술가정

입력
2009.07.19 23:46
0 0

'기가' 시험을 앞둔 큰애가 공부한 티를 낸다. 우리 때와는 달리 요즘은 기술과 가정이 한 과목으로 둘 다 배운다. 갑자기 멈춘 자동차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여자도 줄고 생선 요리를 먹다가 뒤집는 바람에 애인에게 한 소리 듣는 남자도 줄어들 것이다. "앙트레는 뭘까요?"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방향은?" 문득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남자가 애인의 행방을 알기 위해 고향 친구를 불러낸다. 고급스러운 양식당이다. 여자는 시골 출신에 형편도 여유롭지 못하다. 복잡하고 낯선 차림표에 여자가 난감해할 거라는 남자의 짐작과는 달리 여자는 술술 막힘없이 요리를 주문해서 남자를 놀래킨다. 여자는 무심한 어조로 툭 한 마디 던진다. "가정관리학과 출신이에요." 수십 년이나 지난 그 장면이 대사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다니 나도 놀랍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여자 주인공에게 대리만족을 느꼈거나 예상이 빗나가 당황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밤 깊도록 큰애가 '기가' 책을 달달 왼다. 그애가 어렸을 때 회원제 할인마트에서였다. 호주산 스테이크 시식 코너 앞에서 고기 굽는 아주머니에게 그애가 주문했다. "레어로 주세요." 대체 이 꼬마 엄마는 누구냐고, 아주머니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