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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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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입력
2009.07.1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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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미국 CBS 이브닝뉴스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즐겨 쓴 클로징 멘트다. 어찌 보면 참 심심하고, 두루뭉실한 말이다. 냉소와 빈정거림, 무책임과 무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이 말을 그러나 미국 시청자들은 좋아했고, 그가 전하는 뉴스를 신뢰했다. 은퇴한 지 한참 후인 2006년 그는 자신의 멘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결과나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논쟁에 상관없이 본 대로 사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의 가장 최고의 이상을 요약한 것"이라고. '그렇고 그런 것'은 냉소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얘기다.

▦ '월터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철저한 취재를 통한 사실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이기를 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종군기자로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 '현장'에 상륙하기도 했다. 1962년 CBS 앵커가 된 후에도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주장'보다 '사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케네디 암살사건과 아폴로 달 착륙 때는 눈물과 탄성으로 국민들과 감정을 공유해 '미국에서 가장 신뢰 받는 남자'가 됐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말은 못 믿어도 월터 크롱카이트의 말은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신뢰의 원천은 정직이었다. 그에게 정직이 최고의 가치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일곱 살 때 한 아주머니가 흘린 동전을 주워 돌려주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언젠가 너는 이 나라에서 가장 신뢰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준 어머니였다. 그 날 이후 그는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알았다. 정직, 성실, 믿음, 프로정신을 앵커의 4가지 덕목으로 삼았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공직 제의를 "솔직하고 직설적인 보도로 평판을 얻었는데 다른 것을 한다면 위선자가 되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가 18일 92세로 사망하자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살아있는 전설'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NY포스트는 그를 '진정한 TV뉴스의 아버지'라고 평가했고, 숀 맥머너스 CBS사장은 "위기와 비극, 승리, 위대한 순간에 미국을 이끈 월터 크롱카이트 없는 CBS뉴스와 저널리즘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이 아이콘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우리 방송도 언제쯤 사실을 함부로 과장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이 앵커의 권리와 멋인 양 착각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이런 '살아있는 전설' 하나쯤 만들 수 있을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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