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시작한 비가 정오를 넘어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아니, 그치기는커녕 갈수록 기세가 올라 쏟아 붓는다. 이런 빗줄기라면 강물은 부쩍부쩍 몸집이 불어날 것이고 어느 집 문간 앞엔 벌써 물길이 넘실대리라. 산 아래 고층아파트는 물난리 걱정이 없다. 그런데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자라면서 겪은 두어 번의 큰 물난리가 몸에 남긴 흔적이다.
마지막 홍수를 겪은 곳은 구수동(舊水洞)이었다. '옛물 마을'이란 이름답게 동네 옆으로 개천이 흘렀는데 나중에 복개공사를 했음에도 큰 비가 오면 늘 몸살을 앓던 동네였다. 사춘기의 나는 '구수동'이란 이름도, 고물상과 가발공장이 나란한 골목도, 비만 오면 한강 수위를 챙기는 지리(地理)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촌스럽고 후줄근한 동네에 사는 게 부끄러워서 어디 사느냐 물으면 대답을 얼버무리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벗은 건 그곳이 시인의 마을이었던 걸 알고서였다. 열일곱 여덟쯤, 우연히 펴든 김수영 시집을 읽다가 시인이 죽기 전까지 이 마을에 살았음을 알았다. 시집에 실린 짧은 약력에 따르면 그는 내가 살던 구수동에서 양계를 하며 십여 년을 살았고, 내가 통학버스를 타고 내리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심드렁하던 동네가 그날부터 달라 보였다. 지저분한 공터에 비죽비죽 솟은 풀들이 혹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그 풀이 아닌가 싶고, 그러자 주위의 모든 것이 다 새삼스러워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지어는 지긋지긋하던 장마도 달라 보였다.
장마로 불어난 물줄기를 보면 "풍경도 바쁘게 보는 풍경이 좋은데 이왕이면 나만 바쁜 게 아니라 모두 다 바쁜 세상이 좋겠다. 나만 바쁘다는 건 이런 세상에선 미안하고 수치스런 일이 되지만 모두 다 바쁘다는 것은 사랑을 낳는다."(<장마풍경> )고 말한 시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풍경이 아니라 풍경을 보는 눈이며, 부끄러운 건 내가 사는 마을이 아니라 그 가난한 풍경을 부끄러워한 내 자신이었다. 장마풍경>
그때 그 마음을 잊고 있었음을 오늘 다시 김수영 시집을 읽다가 알았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小人이 돼간다/ 俗돼간다 俗돼간다"(<강가에서> )는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1964년 작이니 그가 마흔네 살 때 쓴 시다. 마흔이 넘으면 으레 '속되어 가는 것'이요, 속됨을 부끄러워하는 건 젊은 날의 치기라 여기던 나는 뜨끔하다. 얼굴이 더 뜨거워진 건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라는 시를 읽고서다. 어느> 강가에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이 시를 읽고 낯을 붉히지 않는 사람이 나는 부럽다. 그가 아무 타협도 모르고 절정에 서 있다면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고, 혹 그가 철면피하여 자신의 비겁조차 모른다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시절을 살려면 제대로 부끄러워할 줄 알거나, 아니면 부끄러움은 아예 모르거나 할 일이다. 중간에서 기웃대는 건 창피하기도 하거니와 참 고단한 일이다.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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