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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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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입력
2009.07.1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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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오르가즘이 아닐까

8월 대낮 녹음 짙은 왕벚나무에 달라붙어 핏줄 속 피란 피, 검붉게 졸아붙게 만드는

저 소리는

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나무의 교성

아니라면 지난봄 꽃떨기, 떨기

펑, 펑 터져오르던 그 지독한 꽃멀미를 어찌 납득할 수 있으랴 숯덩이 삼키듯 온몸 불붙어도 실토막 같은 신음 한마디 뱉지 않던

그 지극한 고요를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이 귀 따가운 소리는 말 그대로 아리따운 소리(嬌聲), 일찍 혼자된 큰언니 귀 얇은 한옥 건넌방에 둔 신혼의 이모네 낮밤처럼

세상 모든 짝 없는 것들 위해

속 깊은 나무는

한 번은 귀로 한 번은 눈으로 두 번

꽃을 피우는 것이다

● 곤충의 울음을 오르가즘에 오른 왕벚나무의 교성으로 들어내는 시인의 귀. 이 귀가 인간을 향해 열릴 때 우리는 일찍 혼자된 여인의 외로움을 함께 듣게 된다. 왕벚나무의 꽃피는 순간이 아름다울수록, 아찔한 '꽃멀미'의 순간을 기억하면 할수록 지금, 혼자 된, 짝없는 한 인간의 외로움은 무한대해, 그 외로움의 고요는 그러나 어떤 열정을 누르고 있는 들끓는 열옥.

나무는 그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눈으로 한 번 꽃을 피우고 다시 귀로 한 번 꽃을 피운다고 시인은 말한다. 짝없이 나이가 들어가는 많은 분들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리기를 바란다. 망망한 외로움의 여름의 한복판에 서서 폭우를 겪었던 분들에게는,

짱짱한 여름 곤충들의 노래가 울리는 8월이 곧 다가올 거라는 위로를 드리고 싶다. 꽃 피던 시절의 아름다움이 녹음으로 젖어드는 그 계절이 곧 다가와 '아리따운 소리'가 우리의 삶 한복판에 다시 설 거라는 희망의 말도.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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