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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꽃씨'전 한인작가 31명 작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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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꽃씨'전 한인작가 31명 작품 전시

입력
2009.07.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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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의 굴곡 속에서 일본, 중국, 연해주 등으로 떠나야 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ㆍ이산)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7일 개막했다.

'아리랑 꽃씨: 아시아 이주 작가'전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 정부 수립 이전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현재의 독립국가연합으로 이주한 이들과 그 후손 작가 31명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 180여점을 모았다.

연약함 속에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꽃씨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채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이들의 삶과 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이주 지역의 현실에 따라 다르게 흘러온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아픈 역사만을 떠올릴 일은 아니다. 전시를 기획한 박수진 학예연구사는 "한인들의 이주사와 삶을 공감하는 한편, 새로 발굴된 작가와 작품을 접함으로써 한국미술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맨 먼저 만나는 작품은 리얼리즘 화가 조양규(1928~?)의 '폐쇄된 창고'다. 창고 속에 갇힌 검은 얼굴빛의 노동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로도 연결된다.

교사 출신인 조양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다 일본으로 밀항해 막노동을 하며 살았고, 1960년 북송선을 탄 이후의 행적은 묘연한 작가다.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그의 삶, 그리고 저항정신을 담은 작품세계가 재일 미술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 하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카야마 노보루(65)는 철로 침목을 사용한 설치작품을 미술관 야외에 놓았다. 검은 침목은 근대화 과정에 희생된 식민지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재일 작가들의 작품 중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들이 자주 눈에 띈다. 재일 3세 작가인 김영숙(35)은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쌀 낟알을 돋보기와 함께 놓았다. 모두 품종이 다른 쌀들이지만, 그 차이를 알아내려면 돋보기를 사용해야 할 만큼 구별이 무의미하다. 김애순(33)은 두루마리 휴지에 북한과 남한의 여권 표지를 함께 인쇄, 국적의 구분이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재중 작가들의 작품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동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땅과 소를 나눠준 것을 기뻐하는 농민의 모습을 담은 임천(1936~2000)의 '소방울' 등 국가 주최 전람회 수상작들은 강한 주제성과 민속적 소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중국의 사회 변화에 따라 한인 화가들의 작품 경향도 달라진다.

눈동자가 없는 노인의 모습(리귀남 '홍의 노인')을 통해 삶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기도 하고, 회색 배경 속에서 팔 다리를 허우적대는 여인들(김우 '터치 포인트 시리즈')을 통해 가치판단의 모호함을 말하기도 한다. 박광섭(39)의 작품들은 거대한 분홍빛 물방울 안에 사람을 가둬 숨막히는 현대사회를 표현했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흩어진 독립국가연합의 작가들은 다양한 예술적 경향을 보인다.

북한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변월룡(1916~1990)의 뒤틀린 소나무 그림에는 아픔을 인내하고 살아온 한인의 심성이 녹아있는 듯하고, 우즈베키스탄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인 신순남(신니콜라이ㆍ1928~2006)은 강제 이주라는 소재를 극적인 구성의 대작에 담아냈다.

소련 붕괴 이후의 혼돈을 캔버스에 담는 3세대 작가인 김세르게이(57)는 작품 '새장'에서 거대한 사람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창살 속에 억압적 사회상을 그려넣는다. 9월 27일까지, 입장료 3,000원. (02)2188-600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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