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17일 개헌 추진을 공식 제안함에 따라 개헌 논의에 불이 붙을지 주목된다. 일단 정치권의 화두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렇다고 개헌론이 확산돼 실현 단계로 진입할지는 예단키 어렵다. 여야 정치권이 큰 틀의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매우 복잡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추진 동력이 쉽게 확보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김 의장은 이날 구체적 내용이라기 보다는 큰 틀에서 세가지 방향의 개헌을 제시했다. 첫번째가 '선진헌법'이다. 김 의장은 선진헌법을 자유, 인권, 다양성, 관용과 배려 등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세계화, 정보화, 지방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도 포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미래 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아야 한다고도 했다.
둘째로 권력의 분산을 실현하고,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분권헌법'을 강조했다. 이는 권력구조 개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헌론의 핵심이다. 김 의장은 "권력 집중 문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식 투쟁을 부르고 있고, 여야는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 5년 내내 대선 전초전인양 대치와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런 극한투쟁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왕적 성격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나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 분산 형태로 바꾸자는 뜻이다. 분권헌법의 골자로 지방의 자율과 다양성 보장 등도 언급했다.
세 번째로는 '국민통합 헌법'을 제시했다. 김 의장은 이를 지역, 이념, 세대를 뛰어 넘어 국민의 다양한 여론과 염원을 한데 모으는 헌법, 당파적 이해를 배제하고 국민적 합의를 지향하는 헌법이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김 의장의 제안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지는 미지수다.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이 개헌론을 경계하고 나섰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개헌논의가 정략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국면전환용으로 개헌론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에서다. 한나라당의 반응도 신중한 편이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개헌논의를 위해서는 여야간 신뢰가 중요하고 지금은 그런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법 문제 등으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는 현실을 염두에 둔 듯하다.
청와대도 이날 "국회의 개헌 논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나 개헌은 국가 100년 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신중함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도 현재로선 속단키 어렵다.
개헌론은 정파간 이해관계, 차기 대선주자들의 부상, 논의 과정에서의 극심한 사회적 논쟁 등이 복잡하게 얽힐 경우 중간에서 좌초할 개연성도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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