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턴이라면 해볼 만 하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귀한 현장 경험을 했고, 오히려 전 직장보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요즘 사회적으로 기업들의 인턴 제도를 보는 눈이 곱지 않다. 흔히 허드렛일로 시간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 그런데 최근 SK그룹이 협력사와 진행한 인턴 제도는 이 같은 통념을 뒤집어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방식부터 독특하다. SK그룹이 인턴을 뽑아서 중소 협력사로 보낸다. 120만원 가량의 월급은 SK그룹이 주고, 일은 중소 협력업체에서 한다. 무조건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 일손이 필요해 정직원처럼 대우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낸다. 그렇다보니 중소 협력사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 인턴들은 제대로 된 일을 배울 수 있어 서로 좋다. 이달 초에 3개월간 SK 1기 인턴 과정을 마친 신동광, 박혁주, 강민지 씨를 만나 그들의 독특한 인턴 체험을 들어 봤다.
신동광 씨는 SK C&C의 협력업체인 덕장실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인턴 중 최고령이었다. 늦깎이 인턴 생활에는 이유가 있다.
신 씨는 고교 졸업 후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취득해 9년 동안 경기도 자동차정비조합에서 일했다. 그러나 정비가 아닌 사무일을 하다보니 장래가 불투명해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서 SK 인턴 프로그램을 알려줘 이를 보고 지원했다.
신 씨는 인턴 기간 프로그램 개발에 투입됐다. 정직원들과 함께 회의하고 토론하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직원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고령의 인턴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회사에서는 오히려 살뜰하게 대해줬다. "학원에서 배운 것은 실무에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어서 직원들이 퇴근도 미루고 가르쳐 줬어요." 심지어 그를 위해 휴일에 따로 출근해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준 직원도 있었다.
그만큼 그도 노력을 많이 했다. 직원들이 나이 때문에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먼저 다가갔고, 일도 열심히 했다. 회사에서도 그가 마음에 들어 "함께 더 일하고 싶다"며 이번에 인턴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했다.
토목공학(수원대)을 전공하고 SK건설의 협력업체 효동개발에서 일한 박혁주 씨는 인턴 기간에 새까맣게 탔다. 문산-용산 구간을 연결하는 서울 홍대앞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토목 기사로 일했기 때문. 직원들과 함께 측량을 하고 각종 장비 다루는 법도 배워 근로자들을 관리 감독했다. "현장 경험은 처음이에요. 건설 현장에서 목공, 철근 등 작업반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 지 알게 됐죠."
박 씨가 얻은 것은 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베트남 친구들이다. "베트남보다 보수가 높아 건너온 친구들인데,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도 못걸다가 나중에는 고기를 구워먹으며 친구가 됐어요."
이번에 박 씨는 경험 부족 때문에 꺼렸던 건설 현장 근무에 남다른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하반기 SK그룹 공채때 SK건설에 지원할 생각이다.
다음달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를 졸업하는 강민지 씨는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를 운영하는 커머스플래닛에서 의류 상품기획자(MD)로 일했다. 언니가 패션 디자이너여서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번 인턴이 의류 산업을 이해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직접 백화점에 나가서 기획 상품을 판매하고, 의류업체를 돌며 의류를 구입하는 일도 했다.
이 와중에 강 씨는 기자까지 겸했다. 인턴들이 싸이월드에 개설한 블로그 '윈윈스토리'에 SK 인턴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올린 것. 이 블로그는 방문자수가 7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인턴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많이 올렸어요." 인턴 생활을 바쁘게 보낸 그도 이번에 3개월 연장 근무를 하게 됐다.
이들에게 인턴 기간은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취업을 위해 보완해야 할 부족한 점을 찾았고, 거꾸로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했다. 또 중소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봤다. "눈높이를 낮췄어요. 대기업 못지 않은 중소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죠."(신동광)
하지만 아직도 취업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 있다. "인턴을 마쳐도 취업이 보장된 것은 아니니까요."(박혁주) 따라서 이들은 정부나 기업에서 인턴 제도가 취업으로 연결되도록 지원해주고, 알찬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홍보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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