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제헌절 아침이라 노사관계의 법치문제를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떤 관계를 법으로 규율한다는 것은 관계의 유지가 쌍방간 이익에 매우 중요하면서도 자칫 대결과 갈등으로 빠지기 쉽고 그런 경우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경우이다.
복수 노조ㆍ전임자 임금이 현안
만약 쌍방간 손해와 갈등비용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상호 학습을 통해 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 장기적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자치의 필요성이 역설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거나 제3자에게 손실이 전가될 개연성이 있다면 당사자들이 자치의 영역이라 강조하더라도 최소한의 법적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 노사관계의 법치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된 법이다. 일부에서는 이 법의 시행이 13년째 유예되어 온 것을 이유로 별다른 고민조차 없이 또 다시 자동 유예를 주장하고 있고 나아가 시행이 어려우니 폐기해야 될 법이나 다름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여러 상황을 이유로 법 시행 유예에 유예를 거듭하면서도 우리가 이 법을 버리지 못하고 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우리 노사관계의 발전을 담보할 최소한의 법치 기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결사의 자유보장과 노사간 독립적 위치에서의 견제와 균형원칙이다. 이 원칙을 저버리고서 건전한 노사관계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기는 어렵다.
노조를 못 만들게 제한하는 억압적 요소와 노사간의 투명한 견제 관계를 저해하는 담합적 요소를 결연하게 걷어내야 우리 노사관계는 원초적인 한이 쌓이지 않게 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노사자치 원칙을 들어 사용자가 노조 일만 보는 전임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것을 법적으로 규율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과잉 전임자 문제를 자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당연히 법치의 기반을 생각해야 한다. 먼저 당당하게 사회관계의 투명한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법치를 저변에 깔고 그 위에서 기업규모와 노사의 실상을 감안한 자치 차원의 보완장치를 가져가야 한다. 이것이 역전되어 자치를 보장하기 위한 법치의 최소 역할만 강조되어선 안 된다.
전 세계가 1980년대 이후 세계화 과정에 들어선 이후 노사관계의 자치는 법치와 대치되는 별개의 규율원리가 아니다. 상호 보완되거나 병행되어야 노사관계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노사자치주의의 원형이라고 했던 영국에서조차 처음에는 자치라는 명분으로 마냥 영국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노사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보수당의 대처 총리가 주도해서 법치 강화가 이루어졌지만 이후 노동당의 장기집권 과정에서도 노사관계의 법치는 존중되고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위협 받는 노동자들 보호를 위해서도 대처가 남겨놓은 법치의 제도적 틀이 유효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노사자치만으로는 복잡다단한 노사관계 외부환경과 어지러운 노사관계 내부질서를 제어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에 법치의 근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노사가 서로 잘하면 사실 법은 귀찮은 존재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노사가 과연 스스로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지금껏 잘해왔는데 법적 규율이 왜 새삼 필요하냐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는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그런 차원에서 결코 노사만이 그 운명을 가를 수 있는 노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규율 꺼리는 노사자치는 안돼
세계 최하위권 수준의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불안정성이 가져다 주는 피해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공동으로 경험하면서 제도 정착 과정에서 일부에서 일시적인 고통이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사회 주체들의 일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만든 법제도이다. 최소한 이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자치의 논리가 아닌 법치의 논리 안에서 먼저 반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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