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끼는 학교 후배인데, 서로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나오라고 했어요."검찰 간부의 소개를 받은 인사가 내민 명함을 받아보니 이름이 꽤 알려진 중견 기업의 부사장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부사장은 기업 오너의 아들이었고, 지금은 그 기업을 물려 받아 착실히 경영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녁 식사 비용은 물론 젊은 부사장이 지불했다. 식사 도중 나눈 대화 내용으로 미뤄 보아 검찰 간부는 가끔 젊은 부사장과 후배 검사들을 동석시켜 식사도 하고 주말에는 골프도 치는 것 같았다. 10년도 넘은, 꽤 오래 전 이야기다.
▦그 무렵 겪었던 일 또 하나. "어제 잘 들어갔니? 과음해서 그런지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해장? 그래, 이따 그 복집에서 보자."노크를 한 뒤 문을 열자 한창 통화 중이던 검사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뜻하지 않게 사적인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됐지만 그 검사는 개의치 않았다. 전날 대학 동기이자 사법시험 동기인 변호사와 술자리를 가졌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꼼꼼한 건지, 치밀한 건지 그 변호사는 친구 검사의 숙취 해소까지 챙겼다. 그 검사는 "오랜만에 만났다"고 했지만 두 친구는 자주 만나는 눈치였다.
▦밥 사고, 술 사고, 때때로 수사비에 보태 쓰라며 용돈도 쥐어주는 스폰서들이 언제부터 검찰 주변을 맴돌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만큼 검찰의 스폰서 문화는 뿌리가 깊다. 스폰서는 외견상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문나면 검사들과의 교유 폭도 넓어진다. 검사들이 서로 스폰서를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폰서 공유''스폰서 계승'이다. 그러나 그들이 헛돈을 쓸 리 없다. 자신의 신변에 탈이 나거나 주변 인사들이 사건에 연루될 때를 대비한 보험용, 민원 해결용으로 검사와 친분을 쌓아놓는 것이다.
▦검사가 기업인 등과 식사하고 술 마시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친분이 도를 넘으면 절제력과 경계심을 잃게 되고 결국 유착으로 이어진다. 수시로 용돈이나 떡값을 받다 보면 액수가 커져 뇌물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수사비가 모자라 스폰서에 손을 벌렸다지만 수사비가 현실화한 요즘에는 그럴 이유가 없다. 스폰서를 근절하려면 검사들이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검사니까 특별한 대접이나 대우를 '받을 수 있다'거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극소수 '스폰서 검사'때문에 매일 구내식당을 오가는 대다수 검사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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