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전영오픈 남자단식 4강과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일군 성한국(46) 대교눈높이 여자배드민턴 감독 가족의 면면은 그의 기록 못지 않게 화려하다.
아내 김연자(46) 한국체대 감독 역시 전영오픈 여자 단ㆍ복식을 석권하고 88서울올림픽 금메달(시범종목)을 따낸 대표주자다. 코트에 인생을 던진 이들의 배드민턴 사랑은 딸 성지현(18.창덕여고 3년)을 통해 또다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성지현은 최근 끝난 국가대표 단식선수 선발전을 유일하게 통과한 고교생이다. 그것도 대학, 실업의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6승1패의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당당히 '실력'으로 차세대 여자 간판 자리를 예약했다. 지난 14일 태릉선수촌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는 셔틀콕 가족을 만나 그들의 평범치 않은 일상을 들여다봤다.
■ 태교로 시작된 배드민턴 사랑
역시 타고난 피는 못 말리는 법이다. 배드민턴 코트는 어린 성지현에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7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체육관에 '출근'하다 보니 자연스레 배드민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배드민턴 선수가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니 천상 배드민턴인이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딸이 운동하는 것을 말렸다. 누구보다 여자 선수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딸에게 남다른 의욕을 불어넣을까 싶어 집에 있는 상패를 모조리 치웠을 정도. "유학 가라"는 어머니의 설득 공세는 최근 여름철종별선수권대회 때까지도 계속됐다.
하지만 딸의 고집에 결국 어머니가 '백기'를 들었다. 김 감독은 "이번 선발전에서 정정당당히 네 실력으로 국가대표를 꿰찼으니 이젠 두 번 다시 그만두라고는 안하겠다.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드민턴을 접했으니 어쩌겠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물론 '배드민턴 태교'라고 다 통용되는 건 아니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아들 충현(14)군은 홀로 학업에 매진 중이다. 성 감독이 귀띔했다. "아들이 요새 '왕따' 의식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셋만 가족이냐고 툴툴대던데요."
■ 스승과도 같은 부모, 부모와도 같은 스승
스타 출신 부모도 남다른 애환은 있다. 행여나 지도자들이 큰 부담을 느낄까 봐 마음껏 나서서 지도를 해보지도, 딸에게 부담감을 줄까 봐 다른 부모들처럼 큰 소리로 응원을 해보지도 못했다.
다만 가끔 경기 중 성지현과 어머니의 눈빛이 마주칠 때는 있다. 그럴 땐 둘만의 사인이 조용히 오간다. 손으로 내리치면 '찍어라'는 뜻이고, 손을 발처럼 움직이면 '빨리 해라'는 뜻이다.
최근 대표선발전처럼 소속팀 선수와 딸이 맞대결을 펼치게 되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사실 당시 성지현이 당한 유일한 패배 상대가 김 감독의 제자 장수영(한국체대)이었다. 제자가 이겼다고 마냥 기뻐할 수도, 딸이 졌다고 마냥 같이 아쉬워해줄 수도 없었던 김 감독이다.
그러나 내년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성지현은 김 감독이 맡고 있는 한국체대로 진학할 예정이다. 2012 런던올림픽 준비도 소속팀 지도자로서 측면 지원할 수도 있게 된다. 대학 졸업 후엔 실업팀 대교눈높이를 지도하고 있는 성 감독이 벼르고 있다.
딸로선 선택의 여지가 크게 없는 셈이다. 두 감독은 "잘하는 우수 선수를 유치하면서 정작 딸을 다른 데로 보내면 말이 되겠냐"고 입을 모았다. 성지현의 행복한 비명 한마디, "나도 한번 미래에 대한 고민 좀 해보고 싶다니까요."
■ 가족이 꾸는 올림픽 금메달의 꿈
성지현은 아버지를 닮은 큰 키(175㎝)에 어머니의 현역 때 플레이를 쏙 빼 닮았다. 특히 하프 스매싱과 드롭샷이 일품이다. 하지만 부모의 후광이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다. "부모는 잘하는데 너는 왜 못 하냐"는 말을 숱하게 듣고 자랐다. 알고 보면 성지현에게 있어 최고의 라이벌은 부모인 셈이다.
부모로서 볼 때 자식에게 부족한 것은 없을까. 성 감독은 끈기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불만이라고 했다. 성 감독은 "지현이는 지고 나면 한바탕 울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 하지만 30분 뒤엔 '나쁜 일은 빨리 잊어야 된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 히히덕 댄다. 긍정적인 것도 좋은데 좀 더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 감독도 "최정상에 올라가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물론 김 감독의 지적은 어느덧 어머니 특유의 '잔소리 모드'로 돌입해 있었다.
성지현의 목표는 일단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 감독이 핀잔이다. "그냥 메달이 뭐니, 금메달은 따야지." 물론 성지현이 말한 메달 색깔은 "당연히 금메달"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부모의 열망과 갈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시범종목?때였다. 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을 땐 선수로 출전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았다. 성 감독은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없다. 부모의 입버릇과 같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이제 딸의 가슴 속에서 소중히 자라고 있었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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