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라는 노래가 있다. 1920~30년대 서민 대중 사이에서 유행했던 노래로 정식 노래 제목은 '희망가'이다. 그러나 실제 노래 가사는 희망적이라기보다는 부귀영화도 일장춘몽이고 그냥 엄벙덤벙 세상을 사는 것이 좋다는 내용으로, 차라리 '절망가'나 '실망가'로 부르는 것이 더 낫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디지털 다채널 다미디어 시대는 편안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이 풍진 세상'이 될 것 같다. 더 많은 채널을 통해 더 좋은 서비스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출발은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위성DMB, 지상파DMB, IPTV, 외이브로 인터넷 등등 정부와 기업체가 쌍나발을 불며 더 많은 정보와 풍요로운 채널 제공을 약속한 디지털 미디어의 선구적 서비스들은 전망이 하나같이 실망적, 아니 더 심하게 말하자면 절망적이다.
수 천억원을 들여 쏘아 올린 DMB 전용위성을 사용하는 위성DMB는 순전히 정책당국의 사업 계속 의지만으로 연명해가고 있다. 지상파DMB 모든 채널의 연 광고수입은 다 합해야 100억원대로 대박 TV드라마 한 편 수입에도 못 미친다.
IPTV는 현재 서비스 통로만 갖추어져 있는 상태로 여기에 올라타라고 재촉하는 사공은 많은데 정작 탈 사람은 별로 없고, 그나마 승선했던 사람도 자꾸 내리려고 하는 실정이다. 꿈의 이동형 인터넷 서비스라며 세계시장의 기술표준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던 와이브로 서비스는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닭 갈비' 신세가 되었다.
세상은 순리대로만 흘러가게 두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에 쓸데없는 간섭을 하면 풍진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과연 두 종류의 DMB 서비스가 필요할까? 이것은 엉뚱하게도 디지털 지상파 TV의 전송기술 표준을 선정하는 싸움에서 정책적 개입이 가져온 이상한 시장구도이다.
또한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TV도 풍덩 빠질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다 실업 대책까지 포함해, 시장성보다는 정책의지로 밀어붙이는 것이 작금의 IPTV이다.
왜 이동형 DMB 서비스 방식 선정과정에 전혀 다른 매체, 아니 경쟁매체인 지상파 TV의 기술표준 결정이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매체시장의 인력 수급이 얼마나 된다고 IPTV가 국가적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막대한 신규고용을 창출해야 하는가?
매체는 그것이 시장성 논리이든 공공성, 공익성 논리이든 아니면 이 둘을 혼합한 것이든 간에 자체적 역동성으로 움직인다. 여기에다 매체정책이라는 과도한 외부적 부담을 뒤집어 씌우면 방향을 잃고 비틀거린다.
그 결과가 현재와 같은 미디어 난개발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전개될 풍요로운 다채널 다미디어 세상에서 정책당국에 의한 시시콜콜한 간섭은 순리가 아니다. 큰 틀만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한번 마음대로 놀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멍석을 깔아주면 잘 놀지 않는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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