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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23년만에 연작시집 '만인보'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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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23년만에 연작시집 '만인보' 탈고

입력
2009.07.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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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풀려났네요. 이번엔 이상하게 아무 느낌이 없어 마지막 마침표를 찍곤 아내한테 '다 마쳤네…' 한 마디 한 게 전부예요."

고은(76) 시인이 23년에 걸쳐 상재한 연작시집 <만인보> (전 30권ㆍ창비 발행)를 지난 2일 탈고했다. 그가 1980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중 착상, 86년 첫 권을 출간한 <만인보> 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민족의 여러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한 '시로 쓴 인물사전'.

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독창적이고 방대한 기획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현재 총 3,285편의 시가 26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여기에 이번에 쓴 500여편이 27~30권으로 더해지면 <만인보> 30권에는 약 3,800여편의 시가 수록된다.

내년 초 출간 예정인 27~30권은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기를 다루는 가운데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30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시편은 조선시대 비운의 임금 연산군을 다룬 '한강 배다리'. '돌아오는 길 꿩 한 마리였다/ 상감마마께오서 슬쩍 비아냥대었다/ 정승의 위엄에다/ 5만 군사의 위엄에다/ 고작 한 마리 까투리라// 이런 세월 있었다 있다 있으리라'.

마지막 인물로 연산군을 꼽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인은 "정치적 함의 같은 건 전혀 없다"며 "수많은 인간 모양의 하나로 연산군을 다뤘을 뿐"이라고 말했다.

'시로 쓴 민족의 호적부'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는 <만인보> 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스웨덴에서는 외국 작가로는 토마스 만 이후 100년 만에 처음으로 중ㆍ고교 외국문학 교재로 쓰이고 있다. 창비는 내년 30권 완간을 기념해 인명색인 등 자료집 발간과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준비 중이다.

고은 시인은 "세상과의 약속으로부터 풀려났지만 앞으로도 쓸 게 많다"며 "시도 소설도 아닌 새로운 장르 하나를 개척해서 <처녀> 라는 독특한 작품을 집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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