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여야가 동시에 점거 농성하는 참으로 볼썽사나운 사태가 벌어졌다. 본회의 안건 처리 뒤 여야 의원 전원이 회의장에서 퇴장하기로 한 신사협정이 휴지조각이 된 것. 본회의장에서 여야가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막장' 상황은 6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24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각 30여명은 이날 오후 1시13분께 김형오 국회의장이 레바논 파병연장 동의안 등의 안건처리를 위해 열린 '원포인트 본회의' 산회를 선포한 뒤에도 회의장에서 퇴장하지 않고 눌러 앉은 채 점거를 시작했다. 의원들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같이 나가자" "함께 밥이나 먹자"며 서로의 퇴장을 종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야 동시 점거는 상호 불신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기습날치기 처리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선 본회의장 점거밖에 없다는 것이 민주당 논리이다.
이와 달리 한나라당은 직권상정 여부를 떠나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만 '도발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점거는 동시에 시작됐다. 양측 모두 사전에 준비를 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원내핵심 관계자는 점거농성 직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남든, 말든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4일까지 버티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은 승용차 트렁크에 침낭을 넣어 오는 등 농성 준비를 마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면 본회의장 문이라도 부숴 들어가야 하는데 그보단 이왕 들어간 김에 눌러앉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말했다. 비판은 감수하겠지만 불가피성은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20여명씩 3개조로 나눠 농성을 유지하기로 했다.
여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농성이 현실화하자 곧바로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50여명씩 3개조로 나눠 매일 1개조가 밤샘 농성을 벌이기로 대책을 강화했다.
다만 여야 어느 쪽도 '폭력국회'의 부담을 지게 될 의장석 점거를 시도하지 않았다. 일단은 상대의 거동을 감시하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오후 여야원내대표 회담이 무산된 뒤 "민주당은 당장 방(본회의장)을 빼라"(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한나라당이 먼저 나가면 우리도 나간다"(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등 설전이 오가는 걸 보면 여야가 대치를 풀 생각은 애당초 없어 보인다.
현재로선 여야가 본회의장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는 불편한 동거 생활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는 최후의 순간은 아무래도 임시국회 마지막 날 직전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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