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수억 원이 든 현금수송차량이 한때 탈취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용의자가 차량 조수석에 올라탄 보안요원과 격투를 벌이다 교통사고를 낸 뒤 차에서 내려 도주하는 바람에 현금 피해는 없었다.
현금수송업체 A사 보안요원 3명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앞에 검은색 프레지오 수송차량을 주차한 것은 14일 오전 8시30분께. 보안요원 2명이 건너편 SC제일은행 본점 지하 현금인출기(ATM)에 5,000만원을 입금하기 위해 자리를 떴고, 요원 신모(26)씨는 차 안에 남아 금고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차량에는 4억5,000만원 가량 현금이 남아 있었다.
신씨는 갑자기 차량 뒤쪽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용의자가 보안요원을 유인하기 위해 돌로 차량 뒷유리를 깬 것. 신씨가 차에서 내려 뒤를 살피는 사이, 용의자는 수송차량 왼편으로 돌아 운전석에 앉았다. 용의자는 조수석 쪽 문에 매달린 신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급히 안국역 방향으로 U턴을 했다. 이어 조수석에 올라탄 신씨와 용의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중앙선을 넘나들며 지그재그로 30m 가량 달리던 차량은 공평동 종로타워 앞에서 승용차 2대를 잇따라 들이받고 멈춰섰다. 신씨가 용의자를 발로 차자 용의자가 핸들을 급하게 꺾으면서 중앙선을 침범, 신호대기 중이던 폴크스바겐 승용차와 정면 충돌한 것이다.
차량을 후진시키다 스펙트라 승용차와 다시 부딪치자 차에서 내린 용의자는 사고로 혼잡한 틈을 타 청계천 방향으로 도주했다.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차 안에서 범인 얼굴을 발로 마구 차자 (용의자가) '잘못했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30대 초반 남성으로 155~160㎝ 가량의 마른 체격에 안경을 쓰고 줄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경찰은 사고 차량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용의자의 얼굴 옆 모습 등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쫓고 있다. 차량에서 확보한 지문 5점은 정밀 분석했지만 보안요원의 것이거나 몸싸움 와중에서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안요원들은 매일 오전 종로구 현금센터에서 5억원을 받아 제일은행 본점을 시작으로 40곳의 ATM기에 현금을 입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수법 등으로 미뤄 용의자는 이 같은 이동 경로와 시각을 미리 알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보안요원들은 '2명 입금, 1명 차량 대기'라는 보안 매뉴얼을 지켜 현금 탈취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편의점에서 발생한 2억원대 현금수송차량 탈취 사건 때는 보안요원 2명이 모두 차량을 비운 사이 범인이 차량을 탈취해 도주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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