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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동국을 뛰게 하자

입력
2009.07.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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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로서 박지성은 흠잡을 데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몸을 사리지 않는 파이팅,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결정적 기회나 골을 만드는 순발력과 근성에 스스로를 낮추는 미덕과 친화력까지.

그에 비해 타고난 능력이야 어찌 됐든, 지난 모습을 놓고 보면 이동국은 분명 부족한 게 많다. 허정무 감독이 제시한 국가대표의 6가지 조건을 놓고 한 번 보자. 허 감독은 "기량이 뛰어나야 하고, 팀 전술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동료들과 호흡도 맞아야 하며, 희생정신도 필요하고, 경기에 나서면 투쟁력도 가져야 하고, 선수들과의 융화에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로는 부족하다지만

솔직히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선수란 흔치 않다. 지금의 대표선수 중에도 박지성 정도일 것이다. 대부분 한두 가지는 부족하다. 지금의 이동국은 어떤가.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K리그에서 벌써 12골(컵리그 포함 13골)을 넣었다. 득점 2위 그룹과 4골 이상의 차이다. 더구나 8골은 최근 5경기에서 나왔다. "골 감각만은 국내 최고"라는 평가가 과장은 아니다.

그에게 인색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선수들이 죽어라 뛰어 찬스를 만들어주면 편안하게 서 있다가 머리나 발 한번 움직였을 뿐"이라고. 3년 전 배우 황정민이 어느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놓았다"고 한 말과 같다. 맞다. 이동국이 넣은 골은 대부분 그렇게 보인다. 스스로 돌파해 기회를 만들고,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정교한 패스나 골보다는 다른 선수가 만든 기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최태욱이라는 뛰어난 팀(전북현대) 동료의 돌파에 이은 빠르고 정교한 패스가 없었다면 13골이나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동국은 열심히 뛰지 않는 게으른 선수, 몸싸움을 꺼리는 선수, 팀 플레이가 부족한 선수란 소리를 듣는다. 허 감독이 말하는 대표선수의 조건 가운데 몇 가지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동국은 대표팀에 필요 없는 존재이며, 지금의 대표선수들에 비해 자격이 떨어지는 것일까.

모든 대표선수가 박지성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선수라면 포지션에 상관없이 90분 동안 쉬지 않고 사력을 다해 뛰어야겠지만,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골이다. 특히 골 결정력이 약한 대표팀으로서는 감각적인 위치 선정과 정확하고 날카로운 슛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니 '기다리고 있다가 킥과 헤딩을 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열아홉 살 때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을 얻어 화려하게 대표팀에 발탁된 축구천재 이동국에게는 영광보다 좌절이 많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히팅크 감독에게서 버림 받았고,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뜻하지 않은 부상이 독일행을 막았다. 두 번의 해외진출(독일 베르더 브레멘과 영국의 미들스버러)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이천수와 달리 그때마다 원망보다는 자신을 반성하며 한 걸음씩 성숙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3년에는 투지를 키우기 위해 상무에 자원 입대했고, 지난해 영국에서 쓸쓸히 돌아온 후에도 따가운 시선과 무관심에 아랑곳 없이 묵묵히 K리그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성숙해지는 모습 잘 살려줘야

이동국의 나이 서른.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축구선수로는 황혼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그에게 남아공월드컵이야말로 '마지막 꿈'일 것이다. 더구나 두 번이나 눈물을 삼키게 만든 바로 그 통한의 월드컵이 아닌가.

물론 아직 부족하지만 그를 뛰게 하자. 허정무 감독의 말처럼 그것이 "보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을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해 보약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스승(감독)의 능력과 역할이 아닌가. 성남일화에서 전북현대로 옮긴 뒤 바뀐 이동국을 보면 더욱 그렇다. 황선홍이 한일월드컵에서 4강신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듯, 내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이동국이 첫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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