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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미영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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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미영의 죽음

입력
2009.07.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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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슨 하그리브스라는 산악인이 있었다. 1962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이 여성은 10대 후반 전문 등반에 뛰어들어 알프스의 6대 북벽을 모두 오른 뒤 1995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셰르파의 지원도, 고정 로프의 도움도 받지 않고 무산소로 혼자서 오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성은 그가 처음이다. 하그리브스는 이제 새 목표를 정한다. '세계의 산을 높이 순서에 따라 차례로 무산소 단독 등반하자.' 다음 차례는 두 번째로 높은 산 K2였다. 하그리브스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험하다는 그 산을 같은 방식으로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산하면서 만난 시속 160㎞의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감으로써 불 같은 클라이머의 삶을 마감한다.

위대한 여성 산악인이 사라진 그 산에서 고미영도 죽음의 그림자를 스친 적이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죽음 또는 영광 : K2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역사상 최악 산악 사고의 하나'라고 규정한 지난해 8월의 사고였다. 정상 아래에서 얼음 덩어리가 무너져 한국인 3명을 포함해 네덜란드, 세르비아, 노르웨이 등의 산악인 11명이 숨졌는데 고미영은 정상에서 그들보다 조금 먼저 내려와 간신히 화를 면했다.

2년 전 가을 고미영, 오은선을 함께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로 실은 적이 있다. 오은선은 8,000m급 5개봉을, 고미영은 4개봉을 올랐을 때였는데 둘은 10개봉을 올라 저만큼 앞서 있는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역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 뒤 전해진 성과는 실로 눈부셨다. 두 사람은 1년에 3, 4개씩 8,000m급 산을 올랐는데 저 속도라면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주인공이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사람의 속내를 읽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높고 험한 산을 앞서 오르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성취이고 영광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럽다.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1987년 두 번째로 8,000m급 14개봉을 오른 뒤 축하를 받고는 "여러분 가운데 에베레스트를 두 번째로 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분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은 산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대변해준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은 고난을 뚫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칭송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 성과를 이룬 산악인에게는 세속적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20세기 초 유럽 국가들이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경쟁적으로 오른 데서 알 수 있듯 국력의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21세기의 세계는 등정 경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산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국력도, 인구도, 국민소득도 1위가 아닌 우리가 산에서 반드시 1위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결과에 관계없이 도전의식 그 자체를 넉넉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체력, 기술, 근성의 3박자를 모두 갖춘 고미영은 한국에서나, 세계에서나 당분간 나오기 어려운 걸출한 토털 클라이머다. 소탈한 성격으로 남에게 웃음을 주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8,000m 산을 오르면서도 그는 늘 즐겁고 쾌활했다. 차가운 얼음 위에 조용히 누워있는 그는 이제 산의 품에 안겨서 영원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박광희 국제부장 직대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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