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서구 언론들은 "지구촌에 '그랜드파더 붐(grandfather boom)'이 몰려오고 있다"고 야단을 떨었다.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64년까지 전쟁의 상처를 다산으로 달래려던 미국의 베이비 붐 시기에 태어난, 7,700만명의 '베이비 부머'들이 나이 60줄에 은퇴를 시작하면서 사회구조와 시장에 큰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후 호황기의 주역이자 수혜자로서 미국 금융자산의 70% 이상을 보유한 이들의 취향과 움직임에 따라 경제지도가 바뀐다는 점에서 기업은 물론 정부 정책도 큰 전환기를 맞았다는 얘기다.
▦ 일본에서도 '단카이(團塊) 세대'로 불리는, 47~49년 생 베이비 부머 800여만의 은퇴가 가져올 충격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연금 부담을 둘러싼 세대갈등, 노동인구 감소 및 숙련노동 상실, 소비 위축, 세수 감소 등 파장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평균 55세면 정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직후인 55년부터 63년까지 태어난 800만명대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은퇴가 내년부터 줄을 잇게 된다. 경제사회 구조의 메가트렌드가 바뀔 수밖에 없다. 한ㆍ미ㆍ일의 그랜드파더 붐을 '지구촌 현상'으로 주목할 만도 하다.
▦ '한국 베이비 붐 세대, 노후대책이 막막하다'는 보고서를 냈던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정책대응을 다룬 보고서를 다시 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이 세대는 2010년 전체인구의 14.6%인 712만명으로, 일본 단카이 세대 비중(5%)보다 훨씬 높으며 이 중 자영업자와 가족사업 종사자를 뺀 임금근로자 311만명이 2018년까지 차례로 은퇴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 충격도 크지만 이 세대가 9년에 걸쳐 모두 은퇴하면 165만명의 노동력 부족에 처하게 된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 이 분석이 주로 산업현장과 관련된 것이라면 11일 통계청이 세계 인구의 날을 맞아 내놓은 인구 추계는 국가의 존속 가능성과 관련된 것이다. 출산율이 낮아 2018년부터 인구가 줄어 2050년엔 700만명 가까이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는 그렇다 쳐도 15~64세 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가 내년 15명, 2030년 38명, 2050년에 72명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재앙 수준이다. 이런 인구구조를 가진 국가가 살아남을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사회가 눈앞의 문제에만 매달리다간 고려장이 합법화되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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