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을리 없어. 아직 살아있을거야. 얼굴본지 반나절도 안지났는데…."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얼굴을 마주보며 격려했던 산악인 고미영(42)씨의 실족 사고소식을 접한 오은선(43) 대장은 13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후원사인 블랙야크와 위성전화를 통해 연락을 취하고 있는 오 대장은 10일 오후 1시 47분(현지시각) 자신이 먼저 낭가파르바트(8,125m) 정상에 올랐고 하산하던 길에서 정상을 향하던 고씨를 만났다고 전했다.
당시 정상과 캠프4 사이에서 만난 이들은 살갑게 웃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고씨가 먼저 "정상 등정을 축하합니다. 조심해서 하산하길 바랍니다"고 말했고, 오 대장도 "등정길에 행운을 빈다"며 "베이스캠프에서 보자고 했다"고 화답했다.
이렇게 헤어진 오 대장은 캠프4에 도착했지만 이날 밤 9시 10분께 코오롱스포츠 원정대로부터 긴급지원을 요청하는 무전을 들었다.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고씨가 힘들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 대장은 구조에 나서는 다국적 등반대 내셔널 팀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60m 로프와 산소통 1개, 따뜻한 물과 음식 등을 올려보냈다.
잠시 후 고씨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무전을 듣고 가슴을 쓸어 내린 오 대장은 다시 하산길을 재촉, 다음날 오후 2시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오 대장은 이날 밤 8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고씨가 해발 6,200m 지점인 칼날 능선에서 실족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접한 것. 오 대장은 "숨이 멈춘 듯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며 "믿을 수가 없다"고 괴로워했다.
그는 "미영이는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고 등반 의지가 강한 후배였다"며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라며 울먹였다.
두 산악인은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꿈을 실현하려는 선의의 경쟁자였다. 오 대장은 이번에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며 12개봉을 정복했고 고씨도 11개 봉을 성공해 바짝 뒤를 쫓았다. 이들은 지현옥씨가 99년 안나푸르나봉을 오르다 실종된 지 10년째가 되는 올 가을 안나푸르나봉에 사이 좋게 함께 오르자고 약속까지 했다.
오 대장은 현재 모든 일정을 미루고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사고 뒷수습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베이스캠프에 식량과 연료가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서 일단 마을로 내려가 필요한 물품을 가져올 계획"이라며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현지에서 계속 대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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