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놈'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내 몸에 배인 '도둑질 인(印)'을 꼭 씻어내겠습니다."
전과 7범 홍모(46)씨는 상습 절도범이다. 19세 때부터 빈집털이를 일삼으며 전국을 누볐고, 19년은 감방에서 보냈다. '절도-수감-절도'를 되풀이 해온 쳇바퀴 인생. 그 늪에서 벗어나 새 삶을 찾으려는 힘겨운 갱생(更生)의 몸부림에 사법 당국이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
출소한 지 9개월만인 지난 3월 8일 홍씨는 한 PC 방에서 또 다시 지갑을 훔쳐 경찰에 붙잡혔다. 전과 7범에다 누범 기간이었기에 바로 구속됐다. 최하 6년 이상의 징역형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 윤진용 검사는 예상밖의 결정을 내렸다. 구속을 취소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홍씨를 다시 사회로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통상 정상 참작의 여지가 많은 노인이나 청소년 초범에게 적용되는 기소유예가 상습범에게 내려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언제 또 다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갈 지 모르니, 검사로서는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다. 윤 검사는 "홍씨의 경우 재범보다는 갱생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동안 홍씨는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 6월 출감 후 무의탁 출소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옛 한국갱생보호공단)을 제 발로 찾아가 입소했다.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신문 배달을 하고 오후에는 4시간 동안 직업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홍씨가 갱생을 다짐한 것은 2005년 청송교도소에서 노모를 만나면서부터. 20여년간 연락을 끊다시피 했던 어머니가 찾아와 "이제 이렇게 살지 말자"며 눈물을 흘렸다. 홍씨는 "수십년간 제대로 쳐다본 적 없던 어머니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을 본 후에 지금까지의 내 삶이 너무 한스러웠다"고 말했다.
홍씨가 공단 입소 뒤 신문배달로 한 달에 40만원을 벌었다. 난생 처음 합법적으로 번 돈에서 10만원을 떼 노모에게 생활비로 보냈다. 홍씨는 "빈집털이로 수천만원을 벌다, 이렇게 번 40만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출감 직후 장물아비를 찾아가 착수금을 받고 절도 계획부터 세웠을 홍씨의 '개과천선'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PC방에서의 지갑 절도는 여전히 그의 갱생이 쉽지 않은 여정임을 보여줬다. 옆 좌석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저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시 구치소에 수감된 홍씨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공단이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단측은 "누구보다 갱생 의지가 뚜렷하다" "직업훈련에 결석 한 번 안 할 정도로 성실하다" 등의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하며 홍씨를 변호했다.
공단 서울지부 권영호 주임은 "누구보다 진정성을 보여줬던 홍씨가 이번에 다시 감방에 들어가면 더 이상 범죄를 끊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물론 게임방 업주, 신문보급소 소장까지 홍씨 주변을 조사한 윤 검사도 결국 홍씨의 갱생 의지를 읽었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지 3개월째. 양천구에 있는 공단 서울지부에서 만난 홍씨는 최근 직업훈련학원에서 도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매번 남 탓만 하면서 죄를 저질렀는데 돌이켜보면 결국 내 마음 탓이고 내 손 탓이었다.
이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됐다"고 했다. 홍씨는 6개월 정도 공단에서 더 생활하며 "그동안 잘못 사용한 두 손"으로 도배를 배워 인테리어 가게에 취직해 결혼도 하고, 조그만 지물포도 차리고 싶다고 했다. "장남 노릇도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홍씨가 정말 '도둑질의 인'을 씻어내고 주변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을까. 시험대에 오른 홍씨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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