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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사랑을 놓치다 - 청산옥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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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사랑을 놓치다 - 청산옥에서 5

입력
2009.07.1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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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한때 곳집 앞 도라지꽃으로

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

그대는 번번이 먼길을 빙 돌아다녀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 사랑!

쇠북 소리 들리는 보은군 내속리면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또 한 생애엔,

낙타를 타고 장사를 나갔는데, 세상에!

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

모르고 잤습니다

명사산 달빛 곱던,

돈황여관에서의 일이었습니다.

● 곳집 앞에 피다가 지는 도라지꽃. 그 꽃은 나였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먼길만을 돌아다니는 객인지라 나는 단 한번도 내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은군 내속리에서 생긴 일.

그대가 옆방에서 객사의 손님이 되어 들었는데 낙타를 타고 장사를 하는 나는 잠이 들어서 그대를 몰라보았다. '명사산 달빛'이 곱던 그날, 이런 안타까운 일이 기어이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돈황여관에서 일어난 일.

사랑을 놓치는 공간과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그 애틋함은 다르지 않다. 스치다가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수많은 순간들, 돌아보면 아, 사랑이구나, 싶은 순간들. 이 시가 쓰여진 청산옥에서는 또 어떤 사랑을 놓치는 사건이 일어날까?

조금 비관적으로 말한다면 이곳에서도 사랑을 붙잡는 순간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사랑을 놓치고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몸을 옮기는 우리들은 사랑의 나그네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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