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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작품에 찬물 끼얹는 사소한 자막 실수

입력
2009.07.1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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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영화 '길소뜸'(1985). 한국전쟁으로 이산한, 그리고 30여년 세월이 지난 뒤 만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남녀의 아픈 재회를 다뤘다. 분단이 남긴 사회적 고통을 휴머니즘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며 임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길소뜸'은 임 감독에게 작은 회한을 남겼다. 해외 영화제 상영 때 쓰인 영어 자막의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김지미)이 건설회사 대표이자 라이온스클럽의 회원인 남편의 명함을 옛 연인인 남자 주인공(신성일)에게 건네는 데, 그 내용이 자막에는 반영 되지 않았다.

명함에 적힌 내용을 모르는 외국 관객에게는 '나에게 연락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만한 장면. 임 감독은 "여자가 다시는 자신을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로 명함을 건넨 것이었으나 외국 관객들은 오해를 했다. 사소한 실수가 영화적 의미를 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과 불륜에 빠지는 태주(김옥빈)가 남편, 시어머니와 기거하는 곳은 그녀가 지옥이라 말하며 진저리를 치는 '행복 한복집'.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그러나 불친절하게도 영어 자막은 '행복 한복집'을 설명하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의도가 외국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국내 상영되는 외화들도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막 사고로 영화의 무게감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자막에서 오자를 발견할 경우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영사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 시사회를 가진 프랑스 영화 '마이 프렌즈, 마이 러브'는 '소금, 후추…'가 되어야 할 자막을 '소름, 후추…'로 내보내는 '소름 끼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외화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예전보다 자막 교열 보는 회수가 줄었다. 불법 다운로드에 따른 비디오시장 붕괴로 수익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미리 경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보다 많은 사람이 공유한다는 디지털 시대가 낳은 패러독스인가.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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