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서울의 밤은 아름답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행복을 그린 화가_르누아르'전이 18일부터 8월 29일까지 매주 토요일 밤 12시까지 불을 켜고 관람객을 맞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와 함께하는 한여름밤의 미술관 축제'다. 축제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이후 입장하는 관람객은 2,000원 할인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여유롭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밤 10시부터 도슨트의 전시 설명도 곁들여진다.
르누아르전 커미셔너 서순주씨는 "평일에 미술관을 찾지 못하는 직장인 등 보다 많은 관객들이 르누아르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축제를 마련했다"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며 더위도 잊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밤중에도 30도를 훌쩍 넘는 열대야와 장마철의 습한 공기 속에서도 서울시립미술관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보험가 1조원에 이르는 르누아르의 걸작들을 보호하기 위해 20~22도의 온도, 50~55%의 습도 등 최적의 환경을 유지한다.
런던 내셔널갤러리나 파리 그랑팔레 같은 외국의 유명 미술관들이 대형 전시 마지막 날 24시간 개방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국내 전시의 심야 개관은 흔치않은 일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5년 열린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 때 개관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과 그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두 차례, 새벽 3시까지 문을 연 적이 있다.
지난해 7월 63빌딩 60층에 전망대를 겸해 개관한 63스카이아트미술관의 경우 밤 12시까지 문을 열다가 지난 3월 이후 10시로 폐장 시간을 앞당겼다.
메트로폴리탄들에게 밤은 더 이상 잠을 자는 시간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도 '수아레(soiree)'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수아레는 '야간 흥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밤 시간에 이뤄지는 문화 행사를 가리킨다.
밤 9시에 시작하는 성남아트센터의 '수아레 콘서트'는 3년째 롱런하고 있고, 대학로에서는 밤 10시 이후에 막을 올리는 공포연극들이 여름 레퍼토리로 자리를 굳혔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수, 토요일에는 밤 9시까지 개관한다. 이런 상황에서 르누아르전의 심야 개장은 수아레 문화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피카소와 거장전'은 마지막 사흘 동안 24시간 문을 열어 줄서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프랑스인들이 혹한 속에서도 새벽 3시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세계 언론은 이 장면을 "금융위기 속에서도 문화적 욕구는 오히려 높아짐을 보여준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위기의 시기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실망과 고통, 도전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러면서도 예술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된다"고 이 현상을 분석했다.
르누아르전의 심야 개장에서는 어떤 풍경과 새로운 문화현상이 펼쳐질까.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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