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이 우선인가, 법 정의 확립과 검찰권 독립이 중요한가.
에릭 홀더(사진) 미국 법무장관이 '불필요한 과거사 논란을 피하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문을 외면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이뤄진 테러용의자 불법 고문을 수사할 검사를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스위크가 11일 보도했다.
전 정권의 불법고문 수사를 본격화하면 공화당과 보수파가 강하게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이를 계기로 당파 싸움이 격화하면 건강보험과 에너지체제 개혁 등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정책이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볼 때"라며 불법 고문 관련자 사법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번 천명했다.
홀더 법무장관은 대선 이전부터 오바마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였다. 클린턴 정부 때 법무부 부장관을 지내는 등 법무장관에게 필요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뉴스위크는 홀더 장관이 법무부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지나치면 자칫 보스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대통령과 너무 멀어지면 무능해진다는 것이다.
당초 홀더 장관은 백악관처럼 전 정권의 불법 행위 수사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4월 초 관련 보고서를 읽은 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고 측근에게 밝혔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이후 4월 15일 미 육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이 독립전쟁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국군 포로를 신사적으로 대우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사 의지를 천명했다.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등 정권 핵심인사가 직간접적 압력을 넣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뉴스위크는 홀더 장관이 현재 수사 검사 후보를 10명 내외로 압축한 상태라며 수주 내에 명단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무부 측은 "사실과 법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홀더 장관은 "수사 검사 임명 여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면서도 "수사 검사 임명에 그 같은 희망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1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2년부터 8년간 대테러 관련 기밀사항을 의회에 비밀로 한 것은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불법 고문 관련 수사가 본격화하면 부시 정권 고위층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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