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잘못으로…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우이령길 개방 기념행사가 열린 10일 오전 10시 서울 우이동 우이령 입구. 축사자로 연단에 오른 김신조(67) 목사는 행사에 참석한 300여명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무장공비 김신조'가 아닌 '목사 김신조'로 살고 있지만 41년 전 우이령길을 폐쇄시킨 장본인이라는 '원죄'(原罪)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무장간첩으로 남파됐다. 그는 북한 특수부대원 30명과 함께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하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 우이령길을 이용했다.
이 길을 거쳐 서울진입에 성공한 이들은 청와대로 진격했지만 경복고 후문에서 경찰의 검문에 걸리는 바람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김 목사만 생포돼 살아 남았다.
당시 우이령길이 북한군 특수부대의 침투경로로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서울과 양주시를 연결하는 지름길을 다니지 못하고 우회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김 목사는 이날 축사에서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 교현리 주민들에게 직ㆍ간접적, 정서적으로 피해를 줬다"고 사과했다.
우이령(牛耳嶺)길은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에서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을 잇는 총 6.8㎞ 구간이다. 계곡을 감아 도는 길 모양이 쇠귀를 닮았다는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경기북부 주민들이 우마차를 이용해 농산물을 팔러 가나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 한양을 오가던 지름길이었다.
원래는 1~2m 폭의 오솔길이었지만 6ㆍ25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용으로 폭 4~6m로 넓혔다. 67년에는 축대와 배수로 정비도 마쳤지만 1ㆍ21사태 직후 폐쇄됐다.
이처럼 우이령길은 41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와 자연경관이 잘 보전돼 있다. 10여m 높이의 소나무와 잣나무, 산갈나무 등이 비포장길을 따라 울창하게 펼쳐져 있다. 이날 생태탐방에 나선 김 목사는 "41년 전에는 나무도 거의 없었는데 울창해진 숲을 보니 새롭다"고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한편 우이령길은 이달 26일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나 27일부터는 인터넷(www.knps.or.kr) 예약자에 한해 오전 9시~오후 2시까지만 출입이 허용된다. 하루 입장객도 교현리와 우이동 코스별로 390명씩 780명으로 제한된다. 또 출입시에는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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