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접수되는 본안 사건이 매년 평균 1,000건 이상씩 늘어나고 있어 조만간 한해 상고사건이 3만 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상고 남발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개혁과 법원인력 증원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상고사건은 전년보다 1,700건 가량 늘어난 2만8,040건이었다. 대법관 1인당(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제외하고 12명) 한해 2,337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한해 365일 하루도 쉬지 않아도 하루 6.4건의 판결을 해야 한다. 조정ㆍ신청 등 기타 본안 외 사건까지 포함하면 맡아야 할 사건은 더 늘어난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하루만 기쁘고, 다음날부터 6년 임기 동안 고난뿐이라는 대법관들의 자조가 나올 만하다.
이 때문에 심리를 하지 않고 법률적 판단에 하자가 없으면 바로 기각하는'심리불속행 기각'비율이 지난해 전체 판결 사건 중 65.4%에 육박하는 상황이 됐다. 2005년 58.9%에서 대폭 늘어난 수치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거의 대법관이 아닌 대법원 재판연구관 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70% 가량의 상고 사건이 정작 대법관의 책상 위에는 오르지도 못한 채 하급심 판결대로 확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향후 상고 사건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약 25% 가량의 상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미결구금일수를 모두 형기에 산입하게 됨으로써 훨씬 많은 형사사건이 대법원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지금까지는 구금 일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상소를 자제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상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참에 위헌 논란이 없고 상소 남발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해 소송액수나 형량 등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하의 사건은 고법 상고부에서 3심을 담당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지난달 23일 이 같은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에서도 이 같은 방안이 합의됐다가 국회 심의과정에서 제도도입이 무산된 바 있어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무엇보다 고법 상고부 설치는 대법원 사건을 고법으로 분산하는 것일 뿐, 상소 남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고허가제를 도입하자니, 이미 1990년 헌재에서 위헌 선고가 내려진 사안이어서 다시 논의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은 약식기소된 피고인이 정식 재판을 청구할 경우 형량을 높일 수 없도록 돼있는 현행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판사가 사안에 따라 약식 기소됐을 때보다 형량을 높일 수 있도록 해 정식재판 청구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상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소를 제기할 때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를 올리거나, 재판에서 감정비용을 소송 당사자에게 물리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들에 대해 법원의 효율만 앞세워 사법서비스가 훼손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김정진 변호사는 "법원이 형사사건에서 경제 논리나 효율성을 고려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피고인들의 심정을 물리쳐서는 안 된다"며 "법관 수를 늘리고 하급심의 신뢰를 높이는 등 법원의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는 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