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디카로 찍어오면 3,000원씩 지급했다. 불법 주ㆍ정차나 유턴ㆍ좌회전이 많은 곳이 소문이 났고, 그런 '목 좋은 장소'를 선점하느라 싸움까지 비일비재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목 좋은 곳 몇 시간'만 투자하면 월 100만원 수입은 거뜬했다.
2004년엔 성매매금지법 단속이 엄했다. '만나서 함께 들어가는 동선(動線)'을 증거로 만들려면 캠코더 정도는 필요했다. 제대로 한 건만 성공하면 2,00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으니, 궁핍한 대학생들이 적외선 촬영장치까지 사서 올빼미 아르바이트에 나서도 수지가 맞았다.
그렇게 디카를 든 사람들을 '차(車)파라치', 캠코더를 든 사람들을 '성(性)파라치'라 불렀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것은 디카와 캠코더가 없어졌기 때문도 아니고, 교통법규 위반이나 성매매 행위가 근절돼서도 아니다. 그 '파라치'들이 보통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 스스로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학생ㆍ학부모를 '밀고자'로 조장
갖가지 여론조사에서는 일반인의 70% 이상이 그런 '파라치 제도'가 싫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디카나 캠코더의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체질적으로 교통법규를 어기지 못하거나 성매매에 곁눈조차 팔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받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인식을 갖는 자체가 심각한 '불행'이기 때문이다.
단속과 감독의 주체로서야 그만큼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 게다. 3,000원씩 포상금을 주면 5만원씩 벌과금을 물릴 수 있으니 정부로선 대박을 터뜨린 장사다. 은밀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포착해 제공하니 단속공무원의 집단적 특별근무수당을 감안하면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체적 효율의 문제만 고려한 수단으로, 상대방인 국민 개개인의 마음과 인격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심하게 말하면 전체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촌지를 받는 교사를 신고하면 최고 3,000만원까지 포상금을 주고, 정부는 학원의 불법교습을 신고하면 건 당 수십만원씩 주겠다고 밝혔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그것도 어린 학생들까지 포함하여 소위 '학(學)파라치'의 발호를 조장하고 나선 것이다. 디카나 캠코더가 아니라도 최신형 휴대폰으로 무장한 학생과 학부모는 몇 년 전의 차파라치나 성파라치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정부의 밀고자'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계산한 조치일 게다.
15세기 조선시대에 범죄자 색출, 세금 징수, 부역 동원 등을 위해 '인보(隣保ㆍ이웃 보호)자치'를 명분으로 내걸었던 '5가 작통법'이 있었다. 이 제도는 구한말 가톨릭 교도들을 적발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다. 이를 모방해 만들었다는 북한의 '5호 담당제'는 주민들의 불신과 감시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그렇게 비난했던 제도가 아닌가. 조지 오웰의 <1984년>까지 연상하면 좀 과민한지도 모르겠다.
학교 내의 촌지 폐해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학교와 교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학원의 불법교습은 단속되어야 하지만 교과부 교육청 공정거래위 국세청 경찰청 등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기관이 사방에 널려 있지 않은가. 쉽고 편하게 촌지 행태를 근절하고 불법교습을 단속하자고 학생과 학부모를 겨냥해 '학파라치'를 양성하겠다니, 이 정부 교육 책임자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왼손엔 디카, 오른손엔 캠코더'.
백번 양보하여 차파라치나 성파라치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학파라치는 안 된다.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파라치로 용돈 벌기'와 같은 인터넷 사이트가 벌써 개설돼 있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담임교사의 촌지 수수를 적발ㆍ신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습소가 이미 생긴 것을 그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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