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을 처음 시작한 1998년 11월. 채 다섯 살도 되지 않은 딸아이가 느닷없이 물었다. "엄마, 우리 통일됐어?" 엉뚱한 질문에 당황했지만 알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통일이 되면 백두산도 가고 일만이천봉 금강산 구경도 갈 수 있다고 유치원에서 배운 아이가, 때마침 정말로 금강산에 다녀온 엄마를 보며 통일이 된 줄 알았던 것이다. 어떤 기자의 이야기다.
세상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착각은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금강산은 어쩌면 우리에게 '작은 통일'이었다. 반세기가 넘게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고 195만 명이 금강산을 향해 군사분계선을 넘었으며, 딴 세상 사람으로만 알았던 북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함께 울고 웃었다. 남북의 청소년, 학자, 문화예술인, 언론인, 종교인, 농민들이 금강산에서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두 세 차례 금강산은 한 맺힌 이산가족들의 눈물로 덮이기도 했다.
금강산의 경험은 개성공단으로 이어졌다. 지금 개성공단에는 100개가 넘는 공장에서 4만 명에 가까운 남북의 근로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념도 다르고 체제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목표를 위해 하나의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금강산과 개성은 '작은 통일'이었다. 말하자면 통일의 가능성을 보여준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시작이었다.
그런 금강산을 지금은 갈 수 없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오늘이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어떻게 해서든 금강산 가는 길만은 열어 놓아야 한다고 애원하던 목소리도 이젠 점점 지쳐가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일상의 하나로 자리 잡았던 금강산이 이제 까마득히 먼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금강산이 막히자 남북을 오가는 길은 온통 가시밭이 되어버렸다. 선죽교와 박연폭포를 향하던 버스 행렬이 멈췄고, 재기를 꿈꾸며 개성공단으로 들어갔던 이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100일이 넘게 조사를 받고 있는 우리 직원의 가족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상봉이라는 생애 마지막 소원을 목숨처럼 움켜쥐고 사는 이산가족들의 한숨이 무겁다.
10여 년 전, 금강산관광은 분단 반세기만에 남과 북을 화해와 협력의 길로 인도했다. 그러기에 지금 남북 사이에 얽히고설킨 문제와 어려움을 푸는 것도 금강산관광의 재개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금강산 가는 길은 단순한 유람 길이 아니다. 그 길은 남북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상생발전, 공존공영 등 좋은 말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 모든 것은 우선 소통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금강산 구경이 곧 통일이라고 생각했던 다섯 살 배기 아이는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것이다. 관광이 재개되면 그 아이를 찾아 금강산에 꼭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해줄 것이다. 너의 생각이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고.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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