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지음ㆍ김석희 옮김/한길사 발행ㆍ전 2권(404쪽, 480쪽)ㆍ각 1만5,500원, 1만6,500원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의 마지막 권은 마침표로 끝난 게 아니었다. 시오노 나나미(72)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 밑에 작은 꼬리를 그려넣어 쉼표로 바꾸고, 로마 멸망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번엔 팍스 로마나(로마 제국에 의한 평화)가 무너진 이후 주인 잃은 지중해를 호령한 이슬람 해적들이 주인공이다. 로마인>
2006년 <로마인 이야기> 를 완간하며 15년간 밀린 방학을 갖겠다고 했던 저자는 방학 대신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는 1,000년간의 지중해 세계를 조명하는 데 착수했다. 지중해는 로마인들이 '우리 바다'라고 불렀던 로마제국의 내해(內海). 통상의 역사 서술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로마의 종언으로 보지만, 시오노는 지중해가 더 이상 로마제국의 내해가 아니게 된 7세기를 로마 멸망의 시점으로 잡는다. 로마인>
<로마인 이야기> 의 후편 격인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는 로마인들의 '우리 바다'였다가 7세기 이후 무주공산의 공해가 돼버린 지중해에 들이닥친 '신문명' 이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좇는다. 로마라는 국제질서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해적의 등장. 서구의 해적은 사익을 얻기 위한 민간 영역의 '피라타(pirata)'와 국가나 종교의 공인을 받는 공공 영역의 '코르사로(corsaro)'로 나뉘는데, 고요한 지중해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탈바꿈시킨 것은 후자였다. 로마> 로마인>
시오노는 납치와 약탈을 일삼으며 지중해를 유린한 코르사로와 무력한 반격을 거듭하는 기독교 세계의 대결을 그리면서 자국민의 안전 하나 보장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통치자들을 비판한다. 당시 로마 교황이 이슬람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닷가 높은 지형에 수없이 망루('사라센의 탑')를 세워 주민들의 재빠른 도피를 도모케 하는 것뿐이었다.
흔히 이슬람의 어마어마한 세력화 속도의 동력을 신흥 종교가 갖게 마련인 돌파력과 아랍 민족의 정복욕에서 찾는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는 데 300년이 걸린 데 반해 이슬람이 북아프리카까지 손아귀에 쥐는 데는 불과 100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 비교된다.
하지만 시오노는 특유의 현실적이고 냉철한 역사관으로 해석을 달리 한다. 당시 비잔티움제국은 기독교 교리논쟁으로 분열을 거듭했고,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세금을 빙자한 수탈이 극심했다. 현실에 절망한 인간은 쉽게 신에게 의지하는 법. 신심 깊은 기독교 시민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들의 신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시오노의 해석이다.
시오노는 북아프리카에서 습격해오는 이슬람 해적들 때문에 잠시도 편할 날 없었던 지중해를 내려다보며 "결국 팍스(평화)란 일반 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이란 안전만 보장되면 자기들끼리 그런대로 잘 해나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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