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남 순천에서 농촌주민 2명이 독극물 막걸리를 마시고 숨진 사건이 일주일째를 맞았지만 경찰은 원한관계에 의한 '독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할 뿐, 이렇다 할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석 달 전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의문사'와 비슷하게 한적한 시골동네 노인들이 희생된 데다, 외부인의 범행 흔적도 없어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의 수사 성과는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이 '청산가리 중독'이었다는 사실을 규명한 게 전부다. 경찰은 6일 오전 9시10분께 순천시 황전면 희망근로현장에서 최모씨(59ㆍ여) 등 할머니 4명이 마신 막걸리 한 병에서 청산가리가 11.18g 함유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이 불특정 다수를 노린 독극물 테러는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씨의 동네는 평소 외지인 출입이 드물고 찾아가기도 쉽지 않아, 범인이 '아무나 죽어도 좋다'는 식의 범행을 노렸다면 굳이 이런 곳을 범행 대상지로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독극물이 든 막걸리는 최씨 동네에서 승용차로 30~40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순천시내와 시 외곽 2개 면 지역에만 유통되는 제품"이라며 "그렇다면 범인이 이 곳에서 막걸리를 구입한 뒤 최씨 마을로 와 범행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과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죄를 했다면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 사건을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경찰은 최씨의 남편이 "평소 마을 일을 잘 도와줘 주민들이 집에 술을 갖다 주는 경우가 많아 문제의 막걸리도 주민들이 갖다 놓은 것으로 알고 별다른 의심 없이 토방에 들여놓고 일을 나갔다"고 진술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남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범인은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마을 내부자나 이 마을 출신의 외부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4월 충남 보령군 청소면 성골마을에서 70~80대 노인 3명이 청산가리에 희생된 사건과 비슷한 흉흉한 분위기가 이 곳 마을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들은 다른 주민 50여명과 단체관광을 가서 설렁탕 등을 함께 먹고 귀가했다가 숨졌는데, 부검결과 이들의 위 속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이 사건 역시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이 높지만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마을 주민들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최씨의 마을 110여 가구 270여명 주민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게 됐다. 마을 주민 간에 "우리 중에 누가 범인이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혹시 누가 또 독극물을 타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접촉하며 평소 최씨와 다툼이나 갈등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탐문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워낙 소극적으로 몸을 사리고 있어 수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순천=안경호 기자 khan@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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