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하면 돌이나 청동 같은 묵직한 부피감을 가진 소재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얇은 스타킹과 머리카락, 낚싯줄, 가느다란 철사, 투명한 섬유 등 거의 실체감이 없는 재료를 통해 조각의 전통 개념을 재해석하는 작품들이 많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양감이라는 핵심 요소를 배제시키고 최대한 물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을 통해 조각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목은 '드로잉조각 : 공중누각'. 말 그대로 허공에 지은 집이다.
전시를 기획한 고충환 추계예대 교수는 "공중누각의 본래 의미는 부정적이지만, 조형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면서 "그저 공간에 설치되는 조각이 아니라, 공간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작품들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대부분 바닥에 놓여있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 그래서일까. 존재감이 거의 없는 희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공간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함연주씨의 '부드러운 긴장'은 투명 스타킹을 길게 늘여 스테인레스 고리에 걸고, 공중에 매달았다. 그림자가 오히려 실제 물체보다 더 뚜렷하게 보이는 이 묘한 작품은 사물의 실체감에 대한 선입견을 역전시킨다.
박선기씨의 '집합'은 멀리서 보면 공중에 먹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다. 구멍이 2개 뚫린 단추 사이를 실을 꿴 바늘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투명한 낚싯줄에 작은 숯들을 조롱조롱 매달아 놓은 것이다.
전강옥씨는 중력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나무틀이나 큰 돌에 낚싯줄을 교차시키고, 그 위에 돌을 얹었다. 고정되지 않고 그저 서로의 무게에 지탱하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돌들이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
김세일씨가 가느다란 철사를 꼬아 비누거품처럼 부풀린 작품 '만질수 없는'은 작품 자체보다 여백의 비중이 더 크다. 마닐라 삼인 아바카 섬유를 소재로 쓴 장연순씨는 접합 과정 없이 반복된 풀먹임과 바느질만으로 씨실과 날실이 성글게 교차하는 조형물을 완성시켜 정적인 명상을 유도한다.
나무 조형작업을 하는 보리스 쿠라톨로(스페인)와 종이 작업을 하는 매리 설리번(미국)의 합동 작업인 '나무가 종이를 만나다'도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전시실의 바닥부터 천장, 벽면까지 둥글게 휘어지며 물결치는 나무 틀 사이에 아바카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종이를 붙였다. 단단한 나무는 덩굴처럼 구불거리고, 약한 종이가 그 나무를 넉넉하게 고정시켜 주는 묘한 조화다.
전시장 한쪽 벽면의 투명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종이를 통과하면서 마치 음악처럼 경쾌하고 가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쿠라톨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간과 노는 작업"이라면서 "2006년 뉴욕 전시 때는 전시장에서 춤을 추는 관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8월 30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425-1077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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