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 사는 김모(62)씨는 최근 등산로를 정비하는 희망근로의 대가로 '희망근로상품권' 25만원어치를 포함해 83만원을 받았다.
손주들을 돌봐야 할 처지라서 당장 기쁜 마음에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헛웃음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금 58만원은 한달 생계비를 위해 통장에 넣고 상품권으로는 생필품을 사려고 했으나, 섬 내 21개 식당ㆍ상점 중 단 한 군데도 이 상품권을 받는 곳이 없었다.
군(郡)에 호소했으나, "낙도의 경우 상품권 대신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게 해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수 차례 건의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답변만 들었다. 군 관계자는 "2시간 거리의 도초농협 흑산지점에 전화로 주문하면 물품을 배달해줄 것"이라고 했다.
대전에서 희망근로에 참여중인 이모(44)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희망근로상품권을 쓰려면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상품권을 받는 업소를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데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이씨는 그냥 아는 식당에 가 10% '와리캉(어음할인)'을 제안했다. 하지만 식당주인은 "돈 2만원 벌자고 상품권을 받아주는 지정 은행까지 갔다 오는 게 오히려 손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정부가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희망근로 참여자들에게 급여의 30~50%를 별도의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데 대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해당 상품권을 받는 가맹점이 드물어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희망근로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 데다, 애초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됐음에도 정부가 별다른 보완책 없이 강행했기 때문이다.
7일 희망근로 참여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한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밀려드는 항의전화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상품권을 쓸래야 쓸 데가 없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가맹점 상호, 주소와 실제 상호, 주소가 다르다", "가맹점인데도 안 받아주더라"는 내용이 많았다.
서울 용산구의 정모씨는 "상품권을 쓰려고 해도 동네에 안내된 가맹점이 하나도 없다"면서 "상품권 쓰자고 지리도 잘 모르는 이웃동네 가게를 일일이 찾아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자 일부 지자체들은 소속 공무원과 산하단체, 관변단체 등을 동원해 희망근로상품권 사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목표 할당량과 할당액까지 정해놓아, 그렇지 않아도 각종 목적의 상품권이나 축제 및 행사 입장권을 철마다 사주는 공무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전의 한 간부 공무원은 "최근 3개월간 봉급의 일부를 재래시장 상품권을 구입하는 데 지급했는데 또다시 희망근로상품권을 강매할 경우 직원 반발이 극에 달할 것"이라며 "이번 희망근로상품권은 공무원을 제외하고 민간에게 판매협조를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와 인천, 강원도 일부 시ㆍ군은 희망근로 참여자들에게 상품권 대신 BC카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기프트 카드의 경우 이용자가 가맹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등 또 다른 문제점이 있어 이 또한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경기도의 경우 안산, 의정부, 연천 등 5개 시ㆍ군이 희망근로자들에게 지급할 기프트 카드를 구매해줬다.
행안부는 희망근로상품권 가맹점이 너무 적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맹점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지자체와 협의하겠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이태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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