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한강로를 따라 쭉 가다 보면 왼편으로 5층짜리 흉물스런 모습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용산 참사' 가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이기 때문이다. '남일당'이라는 이름의 건물 옥상에 남아있는 망루의 잔해와 그을린 벽, 유리가 모두 깨진 대형 창들은 당시의 참혹함 그대로다.
건물 앞에는 유족과 천주교 사제들의 텐트가 쳐있고, 그 주변을 경찰버스와 수십 명의 경찰관이 에워싸고 있다. 주위의 꽤 넓은 부지도 철거를 하다 말고 중단된 건물 잔해가 널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하다.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영안실 1층에는 수배자들 전단을 든 경찰관들이 진을 치고 있고, 빈소가 차려진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예 차단돼 있다.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에 일반인들은 영안실이용은커녕 병원에 가기조차 꺼려진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6개월이다. 정확히 170일째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한여름으로 줄달음질 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희생자들의 주검은 여전히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영안실 냉동고에 남아있고, 정부와 유족들과의 대화는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망각 모드로 접어든지 오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다. 중도실용을 제시하고 서민들을 껴안는다며 구멍가게 주인을 찾아가고 떡볶이 집에 들러 서민들의 애환을 듣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용산 참사' 유족들에게는 곁눈질 조차 주지 않는다.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서민 대접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안당국이 주장하는 대로 '도심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서민들의 생존권을 아랑곳 하지 않는 재개발제도와 공권력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희생자일 뿐이다. 이들처럼 힘겹게 살다 졸지에 변을 당한 사람들이 서민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서민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항간에는 정부가 대화의 창구를 닫아놓은 이유가 유족들과의 협상 자체가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앞장서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도는데, 실제 그렇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청와대 정부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임기 내내 족쇄가 돼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루 수만명이 출퇴근하는 한강로 10차선 대로변에 보라는 듯 흉물스럽게 서 있는 건물을 보는 시민들이 매일 어떤 생각을 할지를 한번 떠올려봐라.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가 낳은 비극이라며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까.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소통을 하겠다며, 서민정치를 하겠다며 길거리에 나섰으면 눈에 뻔히 보이는 '용산 참사' 현장을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서민들을 찾아 헤매도 이곳을 찾지 않는 한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 6개월이 다 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많은 인사들이 희생됐지만 지금처럼 장기간 장례식을 못 치르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용산으로 가야 한다. 가서 유족들을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이제 열흘후면 벌써 6개월이다.
이충재 부국장 겸 사회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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