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들이 조망권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에 들어갔다.
9일 서울서부지법 등에 따르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이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신세계건설을 상대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중근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건설 중인 정 상무의 집이 완공되면 한강 조망권을 침해 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지상 2층짜리인 이중근 회장 자택은 남산 기슭 고지대에 위치해 한강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근 회장측은 "신축 주택이 주변보다 지반을 높여 건축 허가를 받은 탓에 이대로 완공되면 모든 전망이 이 집 외벽에 가로막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명희 회장측은 "경관지구 건물 높이 제한인 8m를 지켜 7.8m로 설계하는 등 법적 기준에 맞춰 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은 만큼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설계돼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인 이 주택의 대지는 이명희 회장의 소유로, 실거주자인 정 상무가 공사비를 대고 있다. 이명희 회장 자택도 바로 근처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착공 당시 이중근 회장 등 주민들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했고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소송을 걸었다"며 "합의 없이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영그룹 측은 "착공 당시 문제 제기를 했으나 공사가 강행돼 부득이하게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지법 민사21부(부장 김용빈)는 7일 첫 심리를 연 데 이어 10일엔 실제 조망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조망권을 보호받을 권리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있지만, 조망권 침해 정도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재벌 간 주택 분쟁은 예전에도 종종 발생해, 2005년엔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 일가가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 신축 과정에서 조망권 침해, 소음ㆍ먼지 피해 등을 제기하면서 송사를 벌였다가 이 전 회장이 신 회장 측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