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캔 커피 한 통, 주스 한 병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냥 와도 된다는데도 시간을 내 주어 고마웠던지, 아니면 빈 손으로 오는 것이 민망해선지 무언가 하나씩 들고 온다. 가정에서 그것이 예의라고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오백원짜리 주스를 왜 사왔느냐, 그냥 와라, 실랑이하지 않는다. 나와 그들의 행동 어디에도 불순한 의도는 없기 때문이다.
촌지는 '작은 마음의 선물'
서울시교육청이 교사 촌지를 신고한 사람을 포상하는 부조리 신고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교사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침해했다는 비난도 높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교사 촌지란 무엇인가? 원래 '촌지(寸志)'는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마음을 나타내는 작은 선물'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1년을 정성껏 가르친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사의 촌지와 체벌은 유사점이 있는 것 같다. 체벌은 학생을 훈육한다는 좋은 의도가 있지만 자주 교사의 폭력이 개입되고 학생의 자존감을 파괴한다. 촌지도 그 뜻은 좋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성과 부담이 작용하고, 오가는 정보다 불신을 낳고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한 폭력이 체벌로 미화되는 것처럼 교사가 받은 뇌물도 촌지라는 이름으로 검은 얼굴이 가려진다.
교사 촌지와 뇌물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폭력이 교육적 체벌일 수 없듯이 뇌물이 촌지일 수는 없다. 뇌물은 대가성이며 촌지는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성평가에서 내 아이 성적을 다른 아이보다 더 잘 주기를 기대했다면 뇌물이다. 뇌물의 또 다른 성격은 흔히 제공되는 돈이나 물건의 가치가 크다는 점이다. 교사 면담 때 학생이나 학부모가 들고 오는 오백원짜리 캔커피라면 피차 뇌물로 생각할 일은 없다.
우리나라 학부모가 교사에게 제공하는 돈봉투나 선물은 촌지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뇌물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기이한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애를 특별히 잘 봐달라고 부탁하려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르는 교사에게 고맙다는 마음의 표시를 할 계제도 아닌 학기초에 제공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교사가 바뀌거나, 학기나 해가 바뀌면 전달하는 돈봉투나 선물. 누군가 이를 '세금'이라고 표현했다. 남들 다 내는 세금을 안내고 있다가 아이가 추징금 고지서나 받지 않을까 불안해서 미리미리 낸다고 했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했다. 우리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바로 뇌물과 이런 세금성 선물이 아닐까 싶다.
촌지의 주고 받음을 기뻐하지 않을 교사와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금성 선물'은 서로가 관행으로 인식하면서도 학부모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갈등문제를 내포한다. 모든 교사가 이런 관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관행을 무시하는 학부모를 싫어하는 교사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촌지는 아름다운 것이다. 미국에 1년간 머물 때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크리스마스 휴가 전날, 담임교사에게 쵸콜렛 사탕 등을 선사하던 미국 학부모들이 생각난다. 선물을 고민하던 나에게 한 학부모는 20달러가 넘는 선물은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세일에서 산 7달러짜리 머그 잔에 '생큐'를 연발하던 교사가 떠오른다.
교사 스스로 명예 지켰으면
교사들이 촌지와 관련하여 진정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뇌물이 통하지 않으며 '세금성 선물'이 필요 없는 관행임을 스스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교사를 만날 때는 빈손으로 오시고, 감사 표시를 꼭 하시고 싶은 학부모는 연말이나 학년말에 한 번, 선물은 2만원을 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학교 내규로 정하고 학부모들에게 적극 알렸으면 좋겠다. 진정한 촌지만 받고 뇌물과 세금성 선물은 거절했으면 좋겠다. 촌지 문제의 해답은 부조리 신고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사들의 손 안에 있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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