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외국인들이 영화에 넘친다. <로니를 찾아서> <반두비> 등 아시아계 외국인이 주요 인물로 나오는 영화가 연이어 개봉된다.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한 배우도 있다. 다른 영화에도 출연한 그는 거의 외국인 역 전문배우다. 그만큼 아시아계 외국인이 필요한 영화가 많아진 것이다. TV에서도 외국인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락프로에서, 드라마에서 외국인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제 외국인들은 점점 우리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반두비> 로니를>
영화 속의 일상적 외국인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 외국인들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등장했다. 외국인들은 주로 공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임금을 착취 당하는 피해자들로 나왔다. 혹은 한국 사람들의 이중적인 인종주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였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그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아주 다양하고 풍부한 그들의 삶의 스펙트럼을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만 가두는 오류를 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가 이야기해본 바로는 이런 관점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외국인 자신들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수십 명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러 한국에 와서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뎌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로만 본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온 한국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일상인들일 뿐이다." 그 가운데 한 외국인의 주장이다.
<로니를 찾아서> 의 뚜힌은 드물게 등장한 아주 낙관적이고 밝은 방글라데시 청년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한국을 떠돌면서도 한국인 주인공에게 용기를 줄 만큼 긍정적이다. 이 영화가 새로운 것은 한국인 대 외국인, 악당 대 피해자의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깨졌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한국인과 외국인이 골고루 등장하고, 그래서 영화는 한결 편안하게 우리 일상의 모습을 닮아간다. 로니를>
<반두비> 는 아예 외국인과 한국인 여고생의 로맨틱 코미디 형식을 취한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핵심이 일상성인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의 진화는 놀라울 정도다. 두 사람은 만나면서 자신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같이 나누고 함께 극복해 간다. 반두비>
TV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외국인들은 주로 한국으로 온 신부들이다. <황금신부> <산너머 남촌에는> 등의 드라마가 그랬다. 드라마 속에서 외국인 신부들은 어려운 일 잘하고 강인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로 묘사된다. 시부모도 잘 모시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남편에게도 따뜻이 대하는 그들은 거의 한국의 시골에 어느 날 갑자기 구원처럼 나타난 초인들로 묘사된다. 산너머> 황금신부>
그러나 이런 모습 역시 외국인 신부들의 실체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원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일상적 관점과는 거리가 있다. 드라마 속에 흔하게 나타나는 한국 인물들의 모습처럼 악하거나, 혹은 약한 성격은 그들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외국에서 와서 힘든 일도 잘하는'사람들이다. 미국 영화 속 한국 여성의 모습이 일방적으로 순종적이며 조용한 것처럼, 혹은 동양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흑인 여성들이 성적으로 강인하다는 음험한 판타지로 그려지듯이 이 역시 인종주의적 착각일 뿐이다.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100만을 넘어선 지는 오래다. 국제적으로 자본이 이동하듯이 노동력 또한 이동하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국인의 모습이 이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라면 우리 이야기 속의 그들의 지위도 일상성을 회복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일방적인 피해자나 혹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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