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 2009_서용선 전'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묵직한 공기가 가슴을 누른다. 어두운 조명 속, 짙은 녹색 벽면 위에 걸린 거대한 캔버스는 거친 터치의 녹색, 빨강 등 강렬한 원색으로 뒤덮여있다. 그 안에서는 비극적 역사 속 개인의 고통,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한 내면이 소용돌이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95년부터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 기여한 작가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해 매년 전시를 열고 있다. 올해는 5m 높이의 그림 등 대형 회화 50여점, 조각 10여점, 드로잉 120여점을 통해 서용선(58)씨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서씨의 그림 속 시간의 순서를 따라간다. 태고의 마고 할미를 표현한 8m짜리 철제 조각과 '항아' '탁록의 전쟁' 등 신화를 다룬 그림에서 시작해, 단종의 비극적 죽음과 사육신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이어진다.
계유정난은 서씨가 20년이 넘도록 계속 그리고 있는 소재다. 서씨는 "유럽의 경우 비극적 역사를 그림으로 간직하는데 왜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1986년, 강원 영월의 단종 유배지에 갔다가 인류의 보편적 비극의 원형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 광주민주화운동과 비무장지대를 지나 현대 도시인의 얼굴로 넘어온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등에서 포착한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은 도시인의 고독한 내면을 비춘다. 도시화된 중국의 풍경 또한 다르지 않다.
서씨 그림의 색채감은 비극적이고 암울한 소재와 맞물려 섬뜩한 느낌을 줄 만큼 강렬하다. 그는 "우리 전통 그림은 유교의 영향으로 색채 사용을 억제해왔고, 그것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줬다"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화가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해 색에 대한 틀을 깨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말미에 걸린 서씨의 자화상은 커다란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는 "붉은 눈이 분노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극적인 색을 통해 호기심과 긴장이라는 나의 심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표현을 하고 싶어 요즘 선을 강조한 초상 작업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버리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02)2188-600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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