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어머니를 문병하고 신촌의 긴 골목을 내려오고 있었다. 겨우 서너 살이던 막내를 안고 앞서가던 아버지가 별안간 과일가게로 들어가더니 바나나를 샀다. 딱 한 개였다. 버스 안에서 나와 둘째는 막내가 꼭 쥐고 있는 샛노란 바나나를 훔쳐보았다. 1975년 바나나값은 금값이었다. 아이 머릿수대로 살 수 없었다. 망설이던 아버지는 엄마 품에서 일찍 떨어진 막내가 가여워 하나만 샀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바나나도 하나 안 열리냐고 둘째가 투덜댔다. 겨우 한 살 위였지만 언니는 언니였다. 나는 바보 그것도 모르냐고, 원숭이가 없으니 바나나도 없는 게 아니겠냐고 알은체를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동네 골목에 노란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리는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의 우리의 바람이 곧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온난화는 세계 평균보다 두 배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온난화대응연구센터라는 곳도 있다. 열대 작물들을 시범 재배하고 있다. 지중해나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아티초크나 오크라 같은 입에 선 식물들의 이름도 이제 곧 시금치나 콩나물처럼 입에 올리게 될 것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소의 트림이 온난화에 영향을 주니 쇠고기도 덜 먹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이렇듯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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