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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타도할 정권이란 없다

입력
2009.07.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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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14일 헌법재판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대통령 파면의 효과가 중대한 만큼 파면 결정을 정당화할 사유도 그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헌법ㆍ법률 위반 사실이 있더라도 그 위반이 헌법수호 관점에서 대통령직 유지를 용납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 신임을 배신해 국정 담당 자격을 잃을 정도로 중대하지 않은 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에 박탈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헌재는 당시 노 대통령의 헌법ㆍ법률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도 '파면' 대신 청구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신뢰

당시에는 탄핵 반대 시위나 '탄핵 역풍' 등 정치ㆍ사회적 여파에 눈길을 빼앗겨 헌재 결정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다시 보니 가슴에 새길 만한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헌법이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뿌리를 둔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얼마나 강고하게 떠받치고 있는지가 새롭다.

어지간한 사유로는 대통령의 지위를 흔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 스스로 국민에게 신임을 묻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이 때의 결정에도 일부 언급됐지만 앞서 2003년 11월27일의 결정에서 헌재는 국민투표로 대통령의 신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다. 신임투표가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해악의 역사도 염두에 두었지만, '대통령의 임기를 절대적으로 보장한 헌법 70조' 등의 표현에서 대통령직에 대한 헌재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헌재의 판단이 무조건 절대적일 수는 없다. 다른 세상일과 마찬가지로 헌재의 시각도 변하고, 헌법 자체도 바뀔 수 있다. 또 헌재와 다르게 헌법을 바라보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여기서 헌재의 판단은 헌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회적 의사를 집약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에 비추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회 일각의 시선에서는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시위대는 걸핏하면 'MB OUT', '정권 퇴진'을 외친다. 시위대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며칠 전 "이명박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말 스스로 본부장이 되어 당 안에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 본부'까지 만들어 두었다. 이미 국회에서 그가 보인 '저품위 행동'이나 당의 영향력으로 보아 약간의 희극성까지 느껴진다.

이런 희극성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중부권 시국대회에 참석, 그 동안 지도부나 의원 개개인의 입에서 간간이 나오던 '정권 퇴진' 주장을 반쯤 공식화한 데서 더욱 커진다. 무슨 일이든 '정권 퇴진' '독재 타도'를 외쳐온 과거의 습관에 의존한 결과, 낡은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등장한 돈키호테 모습이다.

당내에 법률가가 수두룩하고, 공수 양쪽으로 갈려 '탄핵 사태'를 겪기도 한 민주당이 '정권 퇴진' 주장에 정말로 무게를 실었을 리는 없다. 국회가 장기 공전을 하고 있어 마땅히 매달릴 일이 없는 마당에 적극적 정치 공세로 내년의 지방선거, 나아가 다음 총선과 대선 가도를 다듬겠다는 것이다.

'권위' 따라야 민주주의 가능

18대 국회 들어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하나의 법칙으로 굳어진 듯하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도록 값진 비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이상적 태도는 처음부터 신기루에 불과했다. 남은 것은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걸림돌을 만드는 것뿐이다. 야당에 허용된 권리이기도 하고, 부분적 성과도 있었다. 민주당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기대를 걸 데는 국민의 태도 변화뿐이다. 그 출발점으로 대통령직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권하고 싶다. 누구나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나 정책을 비판하고 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행여 선거를 통해 스스로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에서 나와서는 곤란하다. '정당한 권력'인 권위에 복종할 뜻이 애초에 없다면 민주주의는 백날 떠들어봐야 헛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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