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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본량초교 여교사 5명 잇달아 시인 등단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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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본량초교 여교사 5명 잇달아 시인 등단 화제

입력
2009.07.0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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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광주 도심에서 차로 40여분 걸려 도착한 광산구 본량초등학교. 학교 앞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황룡강이 흐르고 뒤로는 용진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 말 그대로 '배산임수'(背山臨水)다.

교정에 들어서자 수령 100년은 족히 넘었을 아름드리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천연잔디로 단장한 운동장 갓길을 걷자니 나무에 매단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음악을 들려준단다. 교사(校舍) 뒤 텃밭에는 아이들이 직접 심고 가꾼 채소들이 키 자랑을 하고 있다. 고태석 교장은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말했다.

고 교장의 자랑은 빈 말이 아니다. 교장을 포함해 11명의 교사 가운데 8명이 '꽃길'이란 예쁜 이름의 동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이중 5명은 문예지를 통해 정식 등단한 시인이다.

이들은 전교생이 48명에 불과하고 시내 나들이 하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 학교 안에 목욕탕까지 갖추고 있는 작은 시골 학교를 '시가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학교'로 가꿔가고 있다.

교사들이 동시 동아리를 만든 것은 겨울방학을 앞둔 지난해 11월. 평소 동시에 관심이 많았던 박은주(45ㆍ회장) 교사가 아이들의 동시 쓰기나 일기 지도를 위해 시를 배워보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이들은 3년 전 퇴직한 선배 교사이자 시인인 박정식(61)씨에게 매주 한 두 차례 동시 감상법과 좋은 시 쓰는 법을 배우고, 서로 습작을 나눠 읽고 비평하는 모임을 이어왔다.

올 3월 봄 소식과 함께 첫 결실이 찾아들었다. 동아리 큰언니 나은희(52) 교사와 지난해 첫 임용된 김수현(25) 교사가 나란히 <문학춘추> 신인상을 받으면 등단한 것. 이어 박은주 교사가 <문학춘추> 67호에 당선됐고, 역시 새내기 교사인 오은하(25), 박지윤(25) 교사도 <아동문예> 에 작품을 올렸다.

이날 5,000여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시인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시상(詩想)의 원천"이라고 입을 모았다. 4학년 담임 박지윤 교사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소소한 것들이 시를 쓰는 아이디어로 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 교사는 학교 생활 속에서 주로 시감을 얻는다. 김수현 교사의 작품 '콩점 하나'도 그렇다.

'가정 실태 조사서/ 엄마 이름 쓰는 칸에/ 작은 콩점/ 하나 찍었다.// 콩점 하나 찍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콩점 하나 찍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조심 조심/ 작은 콩점/ 하나 찍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엄마가 남기고 간/ 작은 콩점 하나' 부모가 이혼한 제자의 가정실태조사서를 쓰다가 빈 어머니 이름란에 연필로 점을 찍으며 느낀 애잔함을 노래한 작품이다.

나은희 교사의 '주름살'도 동심으로 들어가 얻은 작품이다. '엄마!/ 내가 돈 많이 벌면/ 주름살 펴 줄까?/ 무슨 소리니./ 엄마도/ 오래 걸려 만든/ 소중한 작품이란다.' 나 교사는 "동시를 쓰면서 아이들의 말 한마디, 아이들과 함께 한 소소한 일상이 다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아이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오은하 교사도 "수업 중에 시상이 떠오르면 스승님께 선물받은 시작노트에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소통도 한결 잘 된다"고 전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도 적지 않다. 교사 수가 적다 보니 각종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전체 회원이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나 교사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각종 업무를 6명의 담임교사가 나눠 하다 보니 자투리 시간 내서 모여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며 "머리 속에서 시상은 떠오르는데 막상 글로 쓰려면 잘 안돼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동시를 쓰는 작업이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박은주 교사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일기나 생활문 등 글쓰기 지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쉬워졌다"며 "동시를 쓰다 보니 모두 동심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고 이 느낌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아주 좋다"고 말했다.

광주=김종구 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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