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치던 우루무치(烏魯木齊)의 도심은 비극의 무대로 변해 있었다. 5일 발생한 위구르족의 시위가 유혈참극으로 돌변하면서 시위 도중 불탄 자동차들이 거리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폐허로 변한 상점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7일 오후에는 한족이 몽둥이, 쇠파이프, 칼 등 흉기를 들고 "한족을 지키겠다"며 도심 중산루(中山路)에서 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당국을 믿고 철수하라"고 설득했지만 흥분한 시위대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또 다른 시위대도 시가 행진을 하면서 위구르족 상점 등을 부수기도 했다. 한족 시위 참가자는 "위구르족이 먼저 공격, 약탈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외국 기자단이 보는 가운데 위구르족 수백명이 "체포된 가족을 석방하라"며 시위했다. 일부 젊은이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으나 경찰이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시위는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5일 일어난 유혈사태의 과정을 지켜본 주민들은 이날 경찰의 강경진압을 증언하며 치를 떨었다. "주민 수천 명이 샤오시톈(小西天) 거리에서'뚜리(獨立)'구호를 외치며 평화롭게 시위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장경찰과 공안이 몰려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가스총까지 쏘자 사람들이 격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주요 거리에는 무장경찰 등이 배치돼 행인과 차량의 통행을 제한했으며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도심 통행을 금지돼 시민들은 어둡고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 상황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렸다. 음식점에서 만난 40대 중년의 위구르 남성은 "당시 상황이 너무 비참해 말하기조차 소름이 끼친다"고 치를 떨었다. 그는 "지난달 광둥성에서 발생한 위구르족 2명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평화 시위를 했을 뿐인데 경찰이 과잉 진압하면서 격분한 군중들의 난동 사태로 이어졌다"며 "경찰은 젊은이, 노인 가리지 않고 무고한 시민을 구타하거나 전기곤봉으로 가격했다"고 말해 이번 유혈극의 원인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꼽았다.
한족은 이와 반대로 위구르족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쟈오(趙)성을 가진 30대의 한 한족 여성은"거리를 지나가던 한 여성을 폭도 여러 명이 마구 구타했고 옆에서 이를 보던 아이가 '제발 엄마를 때리지 마세요'라며 우는 장면을 보았다"며 "한마디로 말하면 폭도들이 미친 듯 보였다"고 말했다. 위구르족이 광기 어린 폭도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박모(50)씨가 한때 위기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화를 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우루무치로 여행을 왔다가 5일 위구르족 밀집지역의 시장에서 쇼핑을 하던 도중 시위에 휩쓸렸다. 박씨는 한족으로 오인돼 피해를 입을 위기에 처했지만 한 소수민족 여인이 다가와 "한족이 아니다"고 시위대를 설득해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우루무치=장학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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