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두 번째 교과서에 대한 검정심의에서 합격 판정을 내렸다.
지유샤(自由社)에서 발간된 이 중학생용 교과서는 2001년 후소샤(扶桑社)에서 나온 교과서(2005년 개정판 발행)와 마찬가지로 임나일본부설을 사실(史實)로 서술하고 식민정책을 미화하는 등 왜곡된 역사관을 담고 있다.
이 교과서의 문제점과 기술 의도를 꼼꼼히 짚어보는 학술대회 '전환기 일본 교과서 문제의 제상(諸相): 2009년 검정통과본 일본 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가 한일관계사학회 주최로 4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렸다.
■ 고대사관에 담긴 현재적 메시지
이재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근ㆍ현대사 부분에 비해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고대사 부분에 주목했다. 지유사 교과서의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기술돼 있다. "일본인은 전체적으로 방향성을 잃고 자신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이 자기를 회복하기에는 모델을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오랜 역사의 지혜에서 배우는 것 외에는 없다… 일본 국토는 옛날부터 문명을 육성하며 독자적인 전통을 키웠다.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가 통합되고 일관되게 자립한 국가이려고 했다."
이 위원은 '새역모'의 이런 목적의식이 고대사 기술에 있어서 외래문화의 수용 및 전통 고수와 관련된 독자성 강조로 투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문물을 활발히 수용하며 천황제의 기틀을 다진 쇼토쿠 태자(聖德太子ㆍ?~622)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 대표적인데, 이 위원은 이런 기술의 바닥에 일본 우익의 현재적 문제의식이 깔려있다고 파악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앞으로 어떻게 자립을 유지, 달성해갈 것인가에 핵심이 있고, 그것이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손승철 강원대 교수는 2006년 기준으로 51.2%의 일본 중학교가 채택하고 있는 도쿄서적 교과서와 2010년부터 사용될 지유샤 교과서에서 보여지는 한국사에 대한 시각 차를 비교ㆍ소개했다. 한국사 관련 부분 중 쟁점이 되는 것은 왜구, 조선 국호, 임진왜란에 관한 부분 등이다.
다수의 학생이 교과서로 쓰는 2006년 도쿄서적판에는 왜구가 "사이코쿠(西國) 무사나 상민ㆍ어민들 가운데 해적으로 나선 자"라고 기술돼 있다. 반면 지유사의 2009년판에는 "왜구란 조선반도와 중국대륙의 연안에 출몰하던 해적집단을 말하며,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포함돼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지유샤의 교과서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근세사의 서술을 고대사에 비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손 교수는 "유럽과의 관계만을 강조해 서술할 뿐 중국이나 조선, 심지어 류큐(오키나와 고대 문명)나 아이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는데, 이는 구미에 대한 콤플렉스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역사인식이 결국 한국 관련 서술을 소략하게 만들고, 무시ㆍ폄하하고 왜곡하게 하는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 아시아 침략의 기억
지유샤의 교과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아시아 진출'에 대해서도 편향된 시각을 드러낸다. 신주백 연세대 연구교수는 "새역모의 교과서는 자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한국, 중국, 베트남의 민족운동의 가치를 부정한다"며 "지유샤판 교과서에서 (해방 후) 한국에 관해 언급한 것은 1948년이 처음인데,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1945년부터 48년까지의 해방공간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한 '점령'의 시기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덕수 고려대 교수는 우익 교과서가 전쟁과 관련한 이미지 자료를 빈번하게 싣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동지나해에 잠들어 있는 야마토'를 필두로, 군함과 전투기 등의 사진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등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새역모의 교과서 채택률이 1%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학생 손에 쥐어지는 숫자의 100배 이상의 교과서가 '시판본'으로 대중에게 파고들고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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