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에는 범람하는 인쇄물들로 인해 사회지도층 사이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그들의 위기의식은 오늘날과는 정반대로 독서량이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독서 과잉'으로 인한 위기였다. 당시 식자층은 독서가 지나치게 보편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하층민의 독서량 증가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자유주의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존 로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했다. 식자우환(識字憂患), 글을 알아봤자 자신의 한탄스런 처지를 비관하게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무지'는 자비로운 신이 하층민의 비참함을 덜어주기 위해 내려주신 아편이었다.
전자문화에 치인 독서문화
또한 지나친 독서는 마치 오늘날 지나친 텔레비전 시청이 일종의 문화적 해악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두려움을 일으켰다. 독서의 보편화를 개탄하는 사람들은 독서가 공중보건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18세기말의 한 기록은 과도한 독서로 인한 신체적 영향으로 감기 두통 시력감퇴 발진 구토 관절염빈혈 현기증 뇌일혈 폐질환 소화장애 변비 우울증 등을 열거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서 열기의 확산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1800년경에 이르러 서유럽인들은 대단히 집중적으로 독서를 하고 있었고, 이러한 책 읽기와 출판의 광범한 증가 속에 서유럽은 독서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한때 독서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던 서양 사회도 지금은 많이 변했다. 예를 들면 미국인들의 독서량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2007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은 1980년대 이래 미국인의 독서 추세를 보여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의 경우, 대학생 연령층인 18~24세 가운데 자발적으로 독서를 하는 비율은 52%로 1992년의 59%를 밑돌았다. 도서 구입비도 1985~2005년에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래 급락세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책을 읽는데 익숙한 성인들의 수는 1992년 40%에서 2003년 31%로 감소했다.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외적으로 미국 초등학교에서 읽기에 엄청난 투자를 한 덕분에 9~11세 때 읽기 능력은 뛰어나며 13세에도 나쁘지 않지만, 그 뒤부터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전자문화'에 빠져들면서 책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독서와 관련된 서양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와 여러 모로 비교된다. 19세기 이후 황금기를 누렸던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일제 지배를 벗어난 20세기 중반 이후 비로소 본격적인 모국어 독서문화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반세기를 넘겼으니 독서문화의 신생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말부터 밀어닥친 전자문화로 겨우 싹을 틔우려던 독서문화는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 2008년 10월 서울시민 대상 조사에서 "지난 1년 동안 교양서적을 몇 권 읽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5%가 "한 권도 없다"고 답했다. 한 가지, 초등학생 때 부모의 권유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어린이가 상급학교 진학 후 수험공부에 치여 책을 덮는 것은 미국과 닮았다.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이번 학기 재정학 과목의 학기말시험 채점을 하고 난 뒤 이렇게 개탄했다. "내 느낌으로는 대학생들이 그저 암기한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만 능할 뿐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고대 그리스ㆍ 로마의 황금시대가 중세 천년의 죽음을 거쳐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도 꽃을 피워본 적 없이 시들어가는 우리 현실은 르네상스란 말도 쓸 수 없다. 처음부터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시점이건만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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