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의 연초 업무계획 등을 '녹색'이라는 이름을 붙여 쭉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6일 내 놓은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본 한 기업체 임원의 얘기다. 그 동안 간간이 발표된 저탄소 녹색성장 대책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핵심은 빠진 채 이미 나온 내용을 재탕삼탕 하며 백화점식 나열에만 그쳤다는 지적이다. 당최 얘기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 종잡을 수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무엇보다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이라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와 일정이 빠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건국 6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저탄소 녹색성장' 은 우리나라가 일류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 비전이자,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문제에도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이 포함되는 것이 기본이다. 이미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고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아직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은 아니지만,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및 제5차 교토의정서 당사국회의에서 의무감축국 포함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은 산업계 이해가 직결된 문제이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한 녹색성장의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날 발표엔 이런 내용이 없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올해 중 중기 감축목표 등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축목표 등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당초 녹색성장위원회는 녹색성장기본법이 통과된 후 이를 근거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 등을 마련, 발표하겠다는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녹색성장기본법은 국회 기후변화특위에 올라간 뒤 국회가 공전하며 처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어 발표부터 하다 보니 법에 근거도 없는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이 나온 것이다.
물론 대통령 훈령에 의해 녹색성장위가 가동되고 있는 만큼 법적 토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의 향후 지속성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벌써부터 정권이 바뀌면 녹색성장도 계속 추진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녹색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녹색으로 은근 슬쩍 둔갑한 경우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ㆍ통신 융합 부문. 정부는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의 10대 정책 방향 중 하나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보기술(IT)융합, 로봇산업, 신소재ㆍ나노 등 첨단 융합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이 안에 생뚱맞게 방통 융합까지 포함시켰다.
방통 융합은 융합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산업계의 이(異) 업종 간 융합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기후변화 적응 강화라는 정책 방향 항목에 4대강 살리기가 포함된 것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5개년 간 10대 정책 과제 중 가장 많은 36조3,000억원의 재정이 투자되는 항목이라 더 눈에 띈다.
그러나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업과의 소통 없이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이 입안됐다는 데 있다. 모 그룹 임원은 "녹색성장의 주체는 결국 자본과 기술을 가진 기업일 수 밖에 없다"며 "미국의 경우 정부가 기업과 충분히 소통하며 녹색성장 정책을 만들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그런 모습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짤 때야 민간 부문이 약해 정부가 주도했던 것이 사실이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고 덧붙였다.
박일근 기자
■ 녹색성장에 5년동안 매년 20조 투입 2012년 車연비 17km이상으로 강화
정부가 올해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매년 20조원 이상을 녹색 성장을 위해 투입키로 했다. 녹색 산업 경쟁력을 위해 2012년부터는 판매하는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ℓ당 17㎞ 이상(또는 온실가스 배출량 ㎞당 140g 이내)으로 강화해나가는 방침도 정했다.
녹색성장위원회(공동위원장 한승수ㆍ김형국)는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4차 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 등 4개 안건을 발표했다.
녹색위는 먼저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 진입'을 녹색성장 비전으로 채택하고, 이를 위한 3대 추진 전략 및 10대 정책방향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녹색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ㆍ태양전지ㆍ하이브리드차 등이 집중 육성된다. 장기적으로는 녹색제품 세계시장 점유율을 8.0%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이다. 또 주력 산업의 녹색전환과 방통융합ㆍ정보기술(IT)융합 등도 중점 추진된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2012년부터 본격 도입된다. 그린빌딩ㆍ그린홈의 활성화, 철도의 수송 분담률 확대, 탄소라벨링 인증품목 500개까지 확대, 탄소포인트제 가입가구 30만 가구 양성 등도 추진된다.
녹색투자 촉진을 위한 자금유입 원활화 방안은 이자 소득이 비과세되는 녹색 채권 및 녹색 예금을 발행, 시중 부동자금 800조원이 녹색 분야에 투자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새로운 내용은 자동차 연비 부문. 2012년부터 자동차 평균연비는 17㎞/ℓ, 온실가스 배출허용 기준은 140g/㎞ 이하로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각 자동차 제작사들은 매년 연비 또는 온실가스 규제 중 하나를 택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각 업체는 2012년 판매차량 30%의 평균연비를 17㎞/ℓ이상 충족시키거나 배출가스를 140g/㎞ 이하로 유지해야 하고, 2013년엔 60%, 2014년 80%, 2015년에는 100%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연비ㆍ배출가스 규제대상은 탑승인원 10인승 이하 승용차이며 기준 미달 업체에 대해서는 2013년부터 벌금도 부과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정대수 이하 소규모 제작사에 대해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연비 강화에 따른 기업들의 충격 완화를 위한 보완장치도 함께 운영된다. 자동차 세제도 현 '배기량 기준'에서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전환한다.
녹색위는 이와함께 2020년까지 대도시의 폐자원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환경에너지타운14곳과 에너지 자립형 저탄소 녹색마을 600곳을 조성키로 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녹색성장(Green Growth)이란 말이 간혹 쓰였지만 세계 정상들이 공식 용어로 많이 쓰게 된 것은 한국이 주창한 이후부터"라며 "녹색성장의 길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길이고 우리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기 때문에 가장 앞서가자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녹색성장을 통해 우리 생활방식이 바뀔 것이고, 근무환경도 바뀔 것이고, 모든 것이 새로운 형태로 갈 것"이라며 "국민의 생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박일근기자
정민승기자 msj@hk.co.kr
■ 저탄소 녹색마을 600곳 조성
평범하고 전형적인 독일 농촌마을이었던 윈데마을(니더작센주)은 2004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코마을로 거듭났다. 하루 24톤씩 가축분뇨와 옥수수 보리 등의 작물을 바이오에너지화해, 마을에 필요한 전기를 돌리고 난방을 해결한다. 에너지 자급에 성공한 윈데마을에서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는 연간 89만유로 어치나 된다.
정부가 6일 발표한 '폐자원 및 바이오매스 에너지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 땅에 맞는 한국형 '윈데마을'을 2020년까지 전국에 600곳 세운다는 계획.
농촌과 소도시를 중심으로 마을이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의 40%를 자급하는 한국형 '저탄소 녹색마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2012년까지 10개의 시범 저탄소 녹색마을을 조성해서, 농어촌형, 도시형, 도ㆍ농복합형, 산촌형 등 주거 여건에 따른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저탄소 녹색마을을 실현하기 위해 음식물쓰레기, 가축분뇨, 폐목재 등 생활쓰레기나 쓰레기매립가스와 같은 폐자원과 유채, 볏짚, 목재부스러기, 해조류 등도 앞으로는 에너지 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013년까지 고형연료화 및 바이오가스화 시설물 48개를 설치해, 하루 1만4,000톤의 폐자원을 에너지화할 계획이다.
2020년에는 가용 폐자원을 100% 재활용한다는 목표다. 또 수도권 매립지 등 전국 14곳에 '환경에너지종합타운'을 조성하기로 했다. 2013년까지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시설 94개, 가축분뇨 에너지화 시설 15개를 설치해 9,000여농가에 전력을 공급하는 등 가축분뇨, 목재펠릿(압축목재 연료), 해조류 등 바이오매스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정부는 폐자원과 바이오매스로 만든 신재생에너지로 2020년 에너지 사용량의 4.16%, 2030년에는 7.12%를 대체할 계획이다. 폐기물 처리비를 아끼고 바이오에너지로 원유를 대체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등 경제적 효과는 2020년 15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부담도 크다.
해조류 바이오매스의 경우 아직 연구개발 초기 단계여서 성공여부도 불확실하다. 당장 2013년까지 5조6,302억원이 필요하고, 멀리 2020년까지 봐도 10조4,000억원이나 투자돼야 하는데, 정부 및 공기업이 아닌 민간기업들이 투자에 나설지가 미지수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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