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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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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입력
2009.07.0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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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폭우, 거친 바람/ 휘몰아치는 폭풍, 흔들리는 여름날// 저 풍성한 들판, 따사로운 날들/ 짝을 찾는 다정한 말들과 아기말// 이 놀랍고 신비한/ 노래해 너의 자줏빛 여름"

두 친구 모리츠(조정석)와 벤들라(김유영)를 먼저 떠나보낸 15세 소년 멜키어(김무열)가 자살 충동을 뿌리치고, 미약하나마 깨달은 삶의 '자줏빛' 희망을 노래한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메시지를 집약하는 마지막 5분. 전 출연진이 함께 부르는 '자줏빛 여름의 노래'(The Song of Purple Summer)는 방황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10대 소년과 소녀가 눈물로 무대 위에 빚어낸 시였다.

토니상 8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연출 김민정)의 힘은 임신과 낙태, 동성애와 자살 등 자극적인 소재에서 기인한 것도, 거창한 줄거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다.

지난달 30일 개막, 프리뷰를 시작으로 첫 라이선스 무대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화법에서 벗어남으로써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충동과 열정을 마음껏 무대 위에 분출했다.

속내를 까발리듯 가슴 속에 품었던 마이크를 뽑아 든 교복 차림의 배우들은 힘껏 발을 구르며 관념적인 가사의 노래로 한 편의 운문을 완성했다. 'The Bitch of Living' 등 작곡가 던컨 쉭이 꾸린 강렬한 록비트의 인상적인 음악은 보너스다.

무대는 단출하되 상징적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인 1891년의 독일을 설명하는 장치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학교에서 멜키어의 집으로, 다시 학교에서 숲 속으로 장소가 바뀌어도 무대에 큰 변화는 없다. 무대 위 객석인 '무대석' 옆 자리에 놓인 걸상 몇 개를 이리저리 옮길 뿐이다.

무대 정면에는 20여 개의 액자가 걸려 있다. 그 중 중앙에 놓인 것은 날렵한 체구의 백마 그림과 한쪽 날개만 남은 나비 장식물이었다. 자유로이 날고 싶지만 인습과 규범으로 둘러싸인 현실의 한계에 부딪쳐 상처받고 마는 아이들의 마음을 함축한다.

100년도 더 된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만큼 이야기는 어찌보면 요즘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벤들라는 신체의 변화와 아이의 탄생 과정을 궁금해하고 성과 철학 등 어른의 세계를 접한 모범생 멜키어는 점점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또 시험에 낙제한 모리츠는 부모가 실망하리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한다.

이 시대 10대들에게 사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고민들이지만 극의 포인트는 성인과 청소년의 첨예한 대립이다. 밝은 조명 아래 이뤄지는 멜키어와 벤들라의 성애 장면처럼 불편한 진실을 무대 위로 과감히 끌어내, 격정에 휩싸인 아이들과 이를 억누르려는 어른의 갈등은 충분히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프리뷰 기간 중이어서 아직 긴장한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김무열 조정석 이미라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Whispering'을 부르던 신예 김유영의 앞으로의 행보도 주목해볼 만하다.

노래를 들으며 끊임없이 곱씹어야 하는 시적인 가사 때문에 취향별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뮤지컬이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갓 지나온, 또는 겪고 있을 10~20대 관객의 선호도는 상당히 높을 듯하다.

2시간 남짓 폭풍처럼 뛰고 소리치며 내면의 갈등을 끌어내던 소년 멜키어가 안정을 되찾은 순간, 오히려 객석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부 젊은 관객은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쏟기도 했다. 내년 1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337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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