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한국의 친척들에게 "괜찮으냐" "불안해서 어찌 사느냐"는 안부 전화를 건다는 기사를 서울에 있을 때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이해는 하면서도 내심 "당찮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거의 매일 북한 뉴스를 다루면서 미국인과 동포들의 북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서울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미국, 북한 위협 심각하게 여겨
1년 파견 근무를 마치고 다음달 서울로 복귀하는 한 공무원은 알고 지내던 미국인으로부터 "당신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정말 나쁜 일 생기지 않고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이 미국인은 "신문에서 북한의 광기(madness)를 매일 읽고 있다. 불안정한 사람이 순식간에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며 재차 안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누군가가 나를 해칠 의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하물며 하와이나 미국 본토가 공격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위협의 정도는 북한의 도발에 만성이 된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북한을 최대 위협국으로, 이란 중국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최근의 여론조사가 터무니 없는 것 같지 않다.
문제는 북한이 미국의 이런 정서를 잘못 이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부시 전 대통령 같으면 정치적 이유에서라도 어르고 달래 타협하려 할지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일방주의가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원칙이라는 면에서는 공화당 정부보다 더 확고하다. 적성국가에 대한 '터프하면서 직접적인 외교'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위협하고 보상받는' 비루한 방식도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그렇게 봉합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오바마 정부가 경험으로 체득한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극악스러운 표현으로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것을 보노라면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제프 모렐 국방부 대변인은 "침략자들을 영영 매장할 것"이라는 북한의 위협에 "그런 어리석음(sillyness)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갖고"라고 반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클린턴 국무장관은 최근 북한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입에서도 북한을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부시 정부 시절에는 없었던 일이다.
북한도 미국에 융통성 보여야
오바마 대통령이 전면적인 대북 제재에 돌입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뭘 원하는지 분명치 않은 북한의 도발에 미국도 딱히 답을 찾지 못한 때문이다.
그가 대북 문제에 관한한 확고한 원칙론자로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역임하고 지금은 대표적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소장으로 있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오바마 정부가 북한을 거론하지 않는 것을 '선의의 무시'로 해석하는데 반대한다. "솔직히 더 이상 할 마땅한 말이 없어서 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에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퇴로가 필요한 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오바마의 미국을 잘 이용하는 방법이다.
황유석 워싱턴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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