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자동차들이 시내에서 너무 빨리 달린다는 것이다. 특히 조금 급하게 운전하시는 기사 분이 모는 택시라도 탄 경우에는 위험하다며 혀를 내두르는 외국인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거칠게 운전하는 습성이 있나 보다 생각하게 된다.
정부 역할에 지나치게 의존
그런데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분명히 한국에서보다 천천히 달리는 데도 왠지 더 위험하게 느끼곤 한다.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신호등뿐 아니라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동차와 보행자들은 각자 눈치껏 알아서 교차로를 통과하거나 길을 건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잘 살핀다고 해도 사방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와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모두 파악하면서 교차로를 지나려면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이럴 때면 한국처럼 신호등이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게 된다. 신호등이 있으면 좌우를 살필 필요 없이 그냥 빨간불이 켜지면 서고 파란불이 켜지면 가면 되는데, 계속 두리번거리며 다녀야 하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같은 거리를 가는데도 시간이 훨씬 더 걸려 짜증스럽게 된다.
조금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런 차이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한국 사회에는 정부가 설치한 교통신호등이 교차로에만 있지 않다. 기업이나 개인의 사회생활에도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는 신호등, 정부의 지침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교통 신호등만 보고 운전하듯이 정부 지침에 따라 사회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혹시 운전을 하거나 사회활동을 하다가 불편한 점이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 정부에 신호등이 잘못 되었으니 바꿔 달라고 하거나 정부 지침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혹시 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사고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 잘못을 묻기 보다는 왜 정부가 이런 일을 미리 막지 못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운전뿐 아니라 사회 활동 전반에서 정부의 신호등이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주의하여 운전하거나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사고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책임을 묻기 보다는 개인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된다.
한국적인 사회 시스템과 미국적인 사회 시스템 중에서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설치해 놓은 신호등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어떤 학원들이 비싸게 교재를 판매하여 원생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정말 이 정도는 정부를 탓하기보다 개인이 학원에 등록하기 전에 스스로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호등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차도 다니지 않는 조그만 골목길까지 정부가 나서서 신호등을 설치해 주길 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에 너무나 막강한 권한을 주고 있다. 문제는 수많은 신호등을 다 관리하려면 정부가 너무 비대해지고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지나친 힘을 갖게 돼 엉뚱한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져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설치해 주는 신호등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호등이 없어도 스스로 책임지고 운전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는 한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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