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일 땐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던 연예인들도 몇 년 지나면 세련된 모습이 된다. 그런 걸 '방송국 물 좀 먹었다'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시골 사는 친척들도 내가 놀러갈 때마다 서울 물은 다르네, 라며 웃곤 했다. 물도 물이려니와 먹는 음식에 따라 쌍동이의 얼굴도 다르게 바뀌는 듯하다. 어쩌다 헤어져 서울과 유럽에서 따로 자란 쌍동이는 어딘가 모르게 모습이 많이 달랐다.
작년 여름 아빠와 떨어져 시카고에 살고 있는 시조카가 서울에 왔다. 그곳엔 한국인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애는 어릴 적 배웠던 우리말을 떠듬떠듬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못 알아듣는 우리말은 영어사전을 뒤적여 알려주었다. 그애의 아버지는 7년 동안이나 미국에 가 있었으면서도 고향 사람들보다 더 사투리를 진하게 하는 이였다. 방송국 물이나 서울 물처럼 시카고 물이라는 것도 있다.
제 아빠를 닮은 그애는 뭐랄까 어딘가 모르게 버터를 좀 바른 듯한 '미국에 사는 한국인' 표시가 팍 났다. 제 아빠가 엉뚱한 말을 하자 그애가 곧바로 되받았다. "아빠, 약 했어?" 미국 친구들과 하던 우스갯소리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니 좀 이상하긴 했다. 그애 아빠는 아이도 못 알아들을 진한 사투리로 버럭 화를 냈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사람의 얼굴을 변화시킨다. 두 사람의 얼굴은 점점 더 달라질 것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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