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3급 장애인이고 저보다 8살이나 어립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 난 큰 불로 여동생 둘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2년 동안 병원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고 날마다 드레싱의 고통을 견뎠습니다. 의사들마저도 가망이 없다고 해서 세례를 받고 죽음을 각오했답니다. 그런데 살아 났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 하루하루 살아내야 했던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 가상한 생명력에만 존경을 표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 미용일을 하고 있는 아내는 여러 번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화상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등과 손, 목에까지 탄력을 잃고 각질화한 피부가 아내를 괴롭힙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손입니다. 직업상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디마디가 벌어져서 피가 배어 나옵니다.
특히 겨울에는 밤마다 제가 반창고로 손가락 열군데 이상을 테이핑을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도 다음날은 아무일 없다는 듯 미용실로 향합니다. 그리곤 끊임없이 공부를 합니다. 저는 미용에도 그렇게 많은 공부가 필요한 건지 몰랐습니다. 어떤 절박함이 제 아내를 저렇게 끊임없이 자기 혹사로 내모는지 사실 아직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사랑스러움을 넘어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평소에도 측은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 며칠 전부터 혼잣말을 하기에 물었더니 우리 집 옆에서 웬 아주머니가 노숙을 한다는 거였습니다. 계속 눈에 밟힌다고 하더군요.
어제 저녁 식사 후에 함께 산책을 나가는데 아내가 갑자기 슈퍼로 들어가 평소엔 입에도 대지 않는 빵을 사더군요. 집 옆 공원으로 따라 가보니 그 아주머니가 보이고, 아내는 약간 떨어진 벤치에 앉더군요. 그런데 아내는 빵을 건네 주진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제게 묻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저 아주머니 자존심을 안 건드리고 이걸 줄 수 있을까?" 결국엔 저도 보지 못하게 하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빵과 음료수를 건네더군요. "따뜻한 밥이었으면 좋을 텐데요" 하면서 말이죠.
아내는 장애인 단체에도 가입을 안 합니다.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봐 무섭대요. 저는 그렇게 매 순간 순간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내는 아내를 존경합니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내를 존경합니다.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조차 원망하지 않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좌절하지 않는 법을 제게 가르쳐주는 아내를 스승으로 존경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합니다.
경기 고양시 장항동 허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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